너무 많은 꽃들을 스쳐 왔다
들녘이거나 골짜기 어디쯤에서 만난
꽃들의 행방은 모르는 걸로 한다
길 건너 나비가 나를 복사한다
나를 훔쳐 간 눈동자 속
달콤한 입술 달래어 더듬거나
구름판 굴러 땅을 훑고 가는 활개 소리가
비구름의 행보에 나비잠 들 것이다
연두고 녹두 빛으로 빛날 때
둥근 생각으로 별과 달을 돌던 꽃과 나 사이
모난 아이들이 태어났다고
바람이 물 위를 걸어와 요람을 펼치는 저녁
표정을 지운 표본실에 눕는다
봄여름 구겨 넣은 날개의 고정 핀이 위태롭다
장다리꽃 울타리를 고양이 울음 따라 넘었는데
외줄 거미 그네를 타고
맑은 하늘 흐르는 구름에 앉았는데
하수의 둔치에서 파닥거리던
행려의 명함
내 잔상을 건너온 당신을 인화한다
말투를 따라 하고
취향에 굳이 동의하고
후생으로 목걸이까지 목에 건
꿈꾼다는 말
남의 꿈을 빌리러 간다는 말이다
꿈 밖 누구에게 근사한 모자 씌워 주고
몽생과 몽사 사이를 날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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