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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명 - 우월한 사진사

 

쇼펜하우어 필경사, 천년의시작

 

 

 맘대로 질주해도 접촉 사고 없는 내 눈은

 후미등이 없다

 

 보는 건 믿는 것

 포충망 안에 잡힌 잠자리

 모금함을 외면한 발길

 

 나무가 수도승 같다는 말

 뿌리가 짐승의 발굽 소리로 울며 자란다는 걸 알까

 낙타의 짐이 점점 가벼워진다는 말

 등에 실린 아픈 기억과 배후를 지워 털어 버린다는 걸 알까

 보이는 것만 만지작거리는 눈이 그렇듯

 씌어진 활자만 믿는 독서가 그렇듯

 그 너머

 

 새의 발은 구름계단을 오르는 즐거운 높이

 가을은 숲길을 지우는 기다란 붓질

 

 현실은 상상 속에 있다

 내 몸이 떨렸던 것만이 현실

 보바리 부인처럼

 돈키호테 기사처럼

 간혹

 

 마들렌의 온기가 농담스레 전해지는 카페

 냄새가 몸을 더듬어 노래가 시작되는 지점

 

 코를 빌렸다

 귀를 늘어놓았다

 

 전조등으로 달리는 내 눈은

 스쳐 가는 잔영으로 시끄러워

 정거장을 모른다

 

 산타 마을 어디쯤에 떨어뜨린 어린 내 눈

 꿈속으로 찾으러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