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지명 - 아나토미

 

쇼펜하우어 필경사, 천년의시작

 

 

 물결무늬 치마의 밑단 실이 풀려나가요

 늘어졌다가 줄어들던

 해진 신념의 길들이 흘러나와요

 

 조각난 유리에 비친 빛깔들의 무질서처럼

 광채 나는 무엇이다가 사라지는

 악력에 덜미가 잡혔지요

 

 밀물로 빨려 들던 모래알이다가

 호루라기에 쫓겨 도주하는 뒷걸음이다가

 어깨가 처진 푸념으로 살아나는 수거함 속

 

 느린 화면처럼 지절지절 풀리는 매듭은

 해안 깊숙한 만 같은 연민이라 말할까

 사랑보다 온도가 조금 낮고

 덜 비밀스러워

 가까운 골목이 먼 골목을 잊을 때까지

 빨강 파랑 감정의 색실이 낡을 때까지

 뼈 없는 물살로 흘려보내요

 파도처럼 움켜쥘 게 많았어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지명 - 서정적인 잠  (0) 2020.11.10
김지명 - 은목서  (0) 2020.11.10
김지명 - 우월한 사진사  (0) 2020.11.09
김지명 - 말할 수 없는 종려나무  (0) 2020.11.09
김지명 - 나비 공화국  (0) 2020.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