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눈멀어 마을 밖에 산다
목구멍에 점막이라도 생긴 것처럼 자꾸 헛기침했을 거다
봄이면 묵묵히 장미의 까다로운 발작을 들었을 거다
화난 주먹을 쥐기 전, 이파리는 파닥이는 웃음으로 저녁을 길렀다
냉장고 소리에 잠은 술래가 되어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밤은 머리 위에 물주머니를 쏟아 생각하는 문장을 지워버렸다
세월이 단풍 들어도 단풍 들지 못하는 추문으로 비가 내렸다
우체부 행낭을 보면 언니의 혀에 돋은 마른 이끼에 침이 돌았다
반만 그려진 비밀 이야기는 벽지로 번져 리시안셔스를 피워 내고
아팠던 얼룩은 화보처럼 식탁과 책상, 방바닥에 굴러다녔다
인기척에 문을 열면 자갈 혼자 비탈길을 내려갔다
소녀의 이름을 기도처럼 발음하면 숨찬 밤이 지나가고
마루에 눈이 내리고 천사의 눈썹 같은 눈이 쌓이고
그의 침대에 들지 못한
언니는 11월의 헌사
호수 옆으로 기울어진 숲의 향낭
소녀야 자라서 내가 되면 안 돼
겨우 내가 되면 안 돼
점선의 발자국 따라 등온선을 긋고 가는 소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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