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닿지 않아
이대로 얼어 버리겠어
북쪽 추위를 모르면서
점령군처럼 밀려왔나
창도 없이
방패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기척 하나 없던 봉쇄수도원 같아
깨진 종소리가 묵상하는 정원을 깨울
잘난 초록은 어디에도 없네
적막이 시계추처럼 태양을 굴리고
남쪽으로 길어지는 그림자가 먼저 수화를 건네는
흑안과 흑발의 나무들 사이
안녕?
간신히 입술을 떼었다
속수무책 기도처럼
나 홀로 난민이에요 만져 보지 못한 내륙의 풀과 바위와 나무들이 영 모른다는 듯 선을 긋고 있어요 눈을 마주칠 때마다 팔과 다리를 오므려 어둠에 패인 내 추운 초록을 먹어버립니다 이파리의 집을 먹어 치운 애벌레처럼
깊은 잠에 들어도 눈이 열린다
밀물과 썰물에도 떠나지 않은 바다가 흘러와
어딨니?
데려가지 못한 지문들
부러져 떨어져 나간 발가락들
햇빛 그물이 흔들어도
발이 닿지 않아
모르는 정원사들이 자꾸만 지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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