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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명 - 쇼펜하우어 필경사

 

쇼펜하우어 필경사, 천년의시작

 

 

 안개 낀 풍경이 나를 점령한다

 가능한 이성을 다해 착해지려 한다

 배수진을 친 곳에 젊음은 야생 골짜기라고 쓴다

 가시덤불 속에 붉은 볕이 흩어져 있다

 산양이 혀를 거두어 절벽을 오른다

 숨을 모은 안개가 물방울 탄환을 쏜다

 적막을 디딘 새들만이 소음을 경청한다

 함부로 과녁을 팔지 않는

 숲이 방언을 흘려보낸다

 무릎 꿇은 개가 마른 뼈를 깨물어 댄다

 절벽 한쪽이 절개되고

 창자 같은 도랑이 넓어진다

 사마귀 날개가 짙어진다

 산봉우리 몇 개가 북쪽으로 옮겨 간다

 초록에서 트림 냄새가 난다

 밤마다 낮은 거래되고

 밤이 낮의 초록을 흥정하는 동안

 멀리 안광이 흔들린다

 흘레붙은 개가 신음을 흘린다

 당신이 자서전에서 외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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