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배후는 고단한 것 흘러간 안개도 불러 모으면 다시 상처가 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늘 바라보는 것)
바람은 아무거나 흔들고 지나간다
여름 건너 하루해가 저물기 전에
염소 떼 몰고 오는 하늘 뒤로 희미한 낮달
소금 장수 맴돌다 가는 냇물 곁에서
오지 않는 미래의 정거장들을
그리워하였다
얼마나 먼 길을 길 끝에 부려두고
바람은 다시 신작로 끝으로 달려가는 것인지
만삭의 하늘이 능선 끝에
제 내부의 붉은 어둠을 쏟아내는 시간까지
나 한 번 흘러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그 먼 강의 배후까지를
의심하였다 의심할 때마다
계절이 바뀌어 그 이듬의 나뭇가지
젖은 손끝에 별들이 저무는 지평까지 나는 자라고
풍찬노숙의 세월을 따라
굽은 길들이 반짝이며 흘러갔다
(어디까지 흘러가면 아버지 없이 눈부신 저 무화과 나무의 나라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 흘러가면 내가 아버지를 낳아 종려나무 끝까지 키울 수 있을까)
세상에 남겨진 내가 너무 무거웠으므로
때로 불붙는 집 쪽에서 걸어 나오는
붉은 짐승을 꿈을 신열처럼 따라가고
오랜
불륜과도 같은 세월 뒤로 손금이 자랐다
아주 못 쓰게 된 헝겊 조각처럼
사소한 상처 하나 가릴 수 없는 세월이
단층도 없이 흘러가 쌓였다
이쯤에서 그걸 바라본다
황혼 건너
저 장대비 나날의 세월 저편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지명 - 사막 정원 (0) | 2020.11.09 |
---|---|
김지명 - 쇼펜하우어 필경사 (0) | 2020.11.09 |
류근 - 옛날 애인 (0) | 2020.11.09 |
류근 - 좋은 아침 (0) | 2020.11.09 |
류근 - 휴가병 (0) | 2020.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