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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 - 휴가병

 

어떻게든 이별:류근 시집, 문학과지성사 상처적 체질, 문학과지성사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류근 산문집, 해냄출판사

 

 

 아버지는 위독했고 나는 군인이었다

 북으로 행군 중일 때 갑자기 휴가증이 나와서

 어리둥절 시외버스를 타고 애인 만나러

 신림시장 순댓집에 가서 앉았다

 가을이었고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애인은 얼굴에 화장을 무섭게 하고서

 내가 없는 사이에 저 혼자 간직한 일들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딱히 갈 곳이 없었으니까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다

 간과 허파와 순대를 골고루 섞었을 뿐

 여관에 가서 또 술을 마셨고 나는 천천히 취했다

 내게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애인과의 섹스에 좀더 집중할 수 있었다 애인은

 그새 많은 것에 깊어진 사람처럼 나를 대했다

 그새 더 많은 것에 가벼워져 있는 나를 배에 태우고

 울지 말라고, 울지 말라고 더 먼 바다를 불러줬다

 그러나 나는 맹세코 운 것이 아니었다 커튼 밖에서

 시간이 얼마나 우리를 불러댔는지 애인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갔을 때 가을 햇살이 쨍그렁, 발밑에 부서졌다

 장례식은 끝났고, 그때, 나는 행군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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