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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원 - 모두가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있었다

 

밀크북_2 세상의 모든 최대화, One color | One Size@1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 - 황유원 시집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4)[ 양장 ] 예언자, 민음사 일러스트 모비 딕 슬픔은 날개 달린 것:맥스 포터 장편소설, 문학동네

 

 

 너는 사무실에서 식물을 기르고

 나는 불광천변에 벚나무를 기른다

 

 또 어느 날 너는 논에서 올챙이를 길러

 그게 개구리가 되는 걸 보고

 개구리는 논물이 석양에 물드는 것을 본다

 

 내가 잘 기른 천둥 하나

 네가 잘 기른 하늘에 울려 퍼지더니

 

 빗줄기 쏟아지고

 

 어둠의 한복판에 개구리 울음 쏟아진다

 나는 그걸 그해 여름 하동에서 너희들과 함께 들었지

 

 비가 그치면

 강원도의 해녀들은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큰 개인 수영장이라고 말하며

 오늘도 그 속으로 뛰어든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아

 봄이 잘 길러 낸 여름이 되었고

 

 바람은 나무가 한 계절 잘 기른 머리를 쓸어 넘겨 주고 있다

 나무는 그걸 몹시 좋아해

 그 나무는 우리가 길러 낸 것이고

 

 때로는 씨엠립에서 앙코르 와트 사이에 반얀나무를 길러 보기도

 서울에서 반얀트리 호텔을 길러 보기도 한다

 누구나 지구 위에서 자기를 기르고 있는 중일 테지만

 

 늦은 밤 호텔에 체크인한 외국인이

 자기를 다른 나라에 잠시 심어 두고 잠든다

 

 그 쓸쓸함은 내가 기른 것이고

 네가 길렀다 바람에 창밖으로 놓쳐 버린 것

 

 길게 기른 머리 바람에 휘날렸다

 가라앉고 있었고

 네가 기른 긴 플레어스커트도 바람에 펄럭였다

 가라앉고 있었다

 

 바람이 기른 건 바람이 죽으면

 바람과 함께

 차분히

 죽고

 

 우린 이제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네가 걷고 있는 길은 내가 길렀고

 내가 걷고 있는 길은 네가 기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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