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사무실에서 식물을 기르고
나는 불광천변에 벚나무를 기른다
또 어느 날 너는 논에서 올챙이를 길러
그게 개구리가 되는 걸 보고
개구리는 논물이 석양에 물드는 것을 본다
내가 잘 기른 천둥 하나
네가 잘 기른 하늘에 울려 퍼지더니
빗줄기 쏟아지고
어둠의 한복판에 개구리 울음 쏟아진다
나는 그걸 그해 여름 하동에서 너희들과 함께 들었지
비가 그치면
강원도의 해녀들은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큰 개인 수영장이라고 말하며
오늘도 그 속으로 뛰어든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아
봄이 잘 길러 낸 여름이 되었고
바람은 나무가 한 계절 잘 기른 머리를 쓸어 넘겨 주고 있다
나무는 그걸 몹시 좋아해
그 나무는 우리가 길러 낸 것이고
때로는 씨엠립에서 앙코르 와트 사이에 반얀나무를 길러 보기도
서울에서 반얀트리 호텔을 길러 보기도 한다
누구나 지구 위에서 자기를 기르고 있는 중일 테지만
늦은 밤 호텔에 체크인한 외국인이
자기를 다른 나라에 잠시 심어 두고 잠든다
그 쓸쓸함은 내가 기른 것이고
네가 길렀다 바람에 창밖으로 놓쳐 버린 것
길게 기른 머리 바람에 휘날렸다
가라앉고 있었고
네가 기른 긴 플레어스커트도 바람에 펄럭였다
가라앉고 있었다
바람이 기른 건 바람이 죽으면
바람과 함께
차분히
죽고
우린 이제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네가 걷고 있는 길은 내가 길렀고
내가 걷고 있는 길은 네가 기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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