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내리는
빗소릴 듣고 있었고
내리는 비가 때리는
물질들이 내는 소릴 듣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둔탁한 소릴 내다
창을 열면 크고 선명해지는
빗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빗소리는 무엇 하나 소외시키지 않았으므로
비로소 간극 없이 이어진 세계 속에서
내리는 비가 때리는 온갖 물질들이 내는 소릴 듣고 있었다
내리는 비가 때리는 물질들을 하나씩 분간해 낼 때마다
세계는 확장되고 있었고
세계는 재구성되고 있었고
때로 한밤중에
가는 물줄기 어딘가 부딪치고 있을 때
밤비 오시나
엄마 또 자다 깨 오줌 누시나
분간해 낼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침대에 누워서도 듣고
창문을 열어 두고도 듣고 있었다
문득 뒤돌아보면
고요한 실내
잠시 비 그치면 다시
고요한 세계
그러나 다시 빗소리 들려오기 시작하면
때로 나는 그게 다시 멀리서 비 내리기 시작한 건지
아니면 벌거벗은 네가 욕조에 들어가 샤워를 하기
시작한 건지 분간해 낼 수 없고
그럴 때마다 세계는 뒤섞이고 있었고
세계는 재구성되고 있었다
이어지는 빗소리 속에서
볼 수 있었으면 없었을 세계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없었을 세계
비가 내리지 않을 땐 정말로 없는 세계 속에서
모든 물질들이 내리는 빗속에서 어깨동무하는 광경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게 돼 버렸을 때까지
비는 내리고 있었고
뭐가 뭔지 아는 것 따윈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돼 버렸을 때까지
비는 내리고 있었고
비는 때리고 있었고
나는 그 모든 물질들의 한가운데 있었다
나는 여전히 창가에 머물고 있었고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태운 -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움직임 (0) | 2020.11.23 |
---|---|
안태운 - 빈방의 빛 (0) | 2020.11.23 |
황유원 - 가을 축제 (0) | 2020.11.23 |
황유원 - 모두가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있었다 (0) | 2020.11.23 |
황유원 - 첩첩산중 (0) | 2020.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