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밤에는 빈방의 빛에 대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잠들었습니다. 빈방의 빛이라니, 나는 몇 년 전 밤에도 그것에 대해서 써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잠들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생활을 하면 빈방은 잃어버리고 어느새 사라지고 문득 그런 게 있었다니. 여전히 묘연했지만 왠지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는 그 빛에 대해서 써야 할 것이라는 강박이 들었지. 빈방의 빛, 시간이 흘러 드넓은 오후가 되었고, 빛이, 빈방의 빛이 들이칠 때 떠오르는 아무거나. 빈방의 빛이 있었다. 비질하는 소리, 비질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었고 나는 방문을 다 닫지는 않고 침대에 누워 있었고, 빈방, 그 사이를 통해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 그것은 여행 계획을 세우는 여행자들의 목소리였고 나는 그 소리가 끝나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랐다. 어쩌면 엄마와 이모 들이 무언가를 모의하는 소리, 나는 그 소리를 배경음처럼 들으며 스르르 잠들고 깨어난 후, 침대 위에서는 할 일이 없었으므로 지도를 펼쳤는데 지도는 지명을 가리키지는 않았고 그래서 지도 뒷면을 응시했고, 그 뒷면은 어쩐지 오래전부터 내내 읽어왔던 지도 같았으므로 다시 소리, 소리는 끊어졌다가 이어지고 지도를 침범하고 이윽고 멀리 빈방의 빛이 있었네. 오후가 들이칠 때, 강가, 강가에 기대어 있는 어슴푸레한 빛, 이 개와 고양이는 물지 않아 핥지 않아 꼬리를 흔들지 않아 다만 무심하게 따라올 뿐. 그네가 어른거리는 듯하다. 하지만 어른거리는 건 그네가 아니라 그네의 그림자. 나는 그네를 탈 수 있었지만 타지 않았고 강을 헤엄칠 수 없었지만 헤엄칠 수 있다고 믿게 되었고 나는 저 개와 고양이를 따라서 가야지, 나를 따라오는 개와 고양이를 따라서. 하지만 다 일렁이는 것뿐이구나. 다시 오후의 빛이 나를 서서히 잠식해가는 시간에 나는 전철을 타고 있었다. 모두가 한가한 시간에 모두가 흩어지고 있는 시간에 그때의 전철 속에서, 그 덜컹거리는 소리에 파묻혀 있을 때 터널을 지나는 동안에만은 숨을 참고 터널이 다 지나가면 그제야 숨을 내쉬는 그런 놀이를 지속할 때, 이윽고 들어차는 빛, 그건 취기와 섬멸, 빈방의 빛 속이었고 어디선가 우산을 건네는 사람도 지나갔다. 나는 평상에 누워서 다 환하다고 말하고 싶었나. 다 거짓이라고 말하고 싶었나. 다 기쁘다고 다 슬프다고 말하고 싶었나. 나는 빈방의 빛 속에 있었고, 빛에 둘러싸여 있었고, 밟으면 흙먼지만 날리는 곳에서 모두가 다 부르기 쉬운 노래를 하고 있는 곳에서 다 떨고 있는 곳에서 다 쉬고 있는 곳에서 빈방의 빛, 날개처럼 순간 모습을 감추기도 하는 곳에서 다 흔들리는 곳에서 나는 있었고, 스며드는 빛, 가늘게 뜬 눈으로, 나는 그 방을 보여주고 싶었지. 그러니까 나에게, 내가 없다면 옆에 있는 사람에게라도. 방금 나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빈방에서 다시 멀어져 빨래를 널러 가야 한다며 거리를 걸었다. 빨래를 널어놓은 채 오래 걷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스쳐갔고, 어느 순간 나는 빈방의 빛 속에서 말라가고 있었고 그러니까 오늘 오후는 여기까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태운 - 창문을 열어놓을 때 곳에 따라 비 (0) | 2020.11.23 |
---|---|
안태운 -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움직임 (0) | 2020.11.23 |
황유원 - 인식의 힘 (0) | 2020.11.23 |
황유원 - 가을 축제 (0) | 2020.11.23 |
황유원 - 모두가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있었다 (0) | 2020.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