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네가 바닥을 쳤을 때
천사는 날아오르고
네가 바닥을 드러낼 때
천사는 널 껴안는다
내가 사랑한 천사 한 마리,
잠시나마 날 사랑해 준 여자들은 모두 한 마리 천사였다
나는 지금 새절역 안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십 몇 년 전 애인이 내 앞을 지나간다
입을 벌린 채 뭐라고 말해 보려 했지만
그것들은 날개 치는 소리만 내다 얌전히 두 날갤 접었고
웃기게도 나는 이 글을 쓰느라 너를 부르지 못했다
이러니까 천사들이 다 달아난 것이다
그때도 그래서 네가 날 떠났을 것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비행을 시작했던 것일 뿐
넌 천사였고
넌 지금도 여전히 천사다
고개 들어 올려다보면
아까부터 내 머리 위를 선회하고 있는 천사들
나는 이제 천사를 모르지만
천사가 날아다니는 하늘 아래를
나는 걷는다
내가 널 버려도
너는 버려지지 않는다
천사는 폐품 재활용 센터의 고철들 틈 사이에서도
여전히 새하얀 선풍기로 남는다
내가 사랑한 천사
나와 드잡이를 하는 대신
내 겨드랑이를 붙잡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준 천사
천상의 기억이 녹이 슨 일상을 번쩍!
거리는 빛 속으로 들쳐 올려 주는 건 아니지만
내가 밤의 성당처럼 우뚝 솟아오르는 것도 아니지만
고여 가는 바닥을 쳐다보다 그 앞에서 우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천사는 내려와 뒤에서 날 안아 준다
게다가 중환자실을 나오는 길,
올해 첫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을 때
비에 젖은 우산처럼
천사가 내 머리 위를 날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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