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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원 - 사랑하는 천사들

 

밀크북_2 세상의 모든 최대화, One color | One Size@1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 - 황유원 시집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4)[ 양장 ] 예언자, 민음사 일러스트 모비 딕 슬픔은 날개 달린 것:맥스 포터 장편소설, 문학동네

 

 

 이를테면 네가 바닥을 쳤을 때

 천사는 날아오르고

 네가 바닥을 드러낼 때

 천사는 널 껴안는다

 

 내가 사랑한 천사 한 마리,

 잠시나마 날 사랑해 준 여자들은 모두 한 마리 천사였다

 

 나는 지금 새절역 안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십 몇 년 전 애인이 내 앞을 지나간다

 입을 벌린 채 뭐라고 말해 보려 했지만

 그것들은 날개 치는 소리만 내다 얌전히 두 날갤 접었고

 

 웃기게도 나는 이 글을 쓰느라 너를 부르지 못했다

 이러니까 천사들이 다 달아난 것이다

 그때도 그래서 네가 날 떠났을 것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비행을 시작했던 것일 뿐

 넌 천사였고

 넌 지금도 여전히 천사다

 고개 들어 올려다보면

 아까부터 내 머리 위를 선회하고 있는 천사들

 

 나는 이제 천사를 모르지만

 천사가 날아다니는 하늘 아래를

 나는 걷는다

 내가 널 버려도

 너는 버려지지 않는다

 천사는 폐품 재활용 센터의 고철들 틈 사이에서도

 여전히 새하얀 선풍기로 남는다

 내가 사랑한 천사

 나와 드잡이를 하는 대신

 내 겨드랑이를 붙잡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준 천사

 

 천상의 기억이 녹이 슨 일상을 번쩍!

 거리는 빛 속으로 들쳐 올려 주는 건 아니지만

 내가 밤의 성당처럼 우뚝 솟아오르는 것도 아니지만 

 

 고여 가는 바닥을 쳐다보다 그 앞에서 우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천사는 내려와 뒤에서 날 안아 준다

 

 게다가 중환자실을 나오는 길,

 올해 첫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을 때

 

 비에 젖은 우산처럼

 천사가 내 머리 위를 날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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