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던 화가는
블루가 자신을 구한다고 믿었다
이제 와 보니 그 병은
에이즈였다
에이즈에 걸린 화가는
자신의 몸을 캔버스로 삼았다
낮에도 밤에도
그의 몸은 한없이 블루
그럴수록 몸에서는 검붉은 반점이 딱딱 피어오르고
그럴수록 그는 더 한정 없이 블루
사람들은 그에게 점점 더 많은 돈을 지불했다
블루가 자네를 살아 있게 하는군
그는 무명에서 벗어나
전위적인 예술가로 불렸다
피를 토하고
그 평화가
블루 속으로 침투할 때마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죽었다
블루 속에서
블루로 뒤엉킨 욕조 안에서
블루로 뒤덮인 궁둥이와 목선과 뒤통수
블루가 흘러넘쳐서 온 집안이
그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를 뒤집어
들것에 싣고 나갔다
새파란 눈동자로군
아주 새파란 눈동자야
그는 멀기도 하고
알 수도 없는
검은 곳에 묻혔다
그의 자화상들만이
가깝기도 가깝고
알 수도 있는 밝은 곳에 걸렸다
그는 산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눈을 감을 때도 되었는데
자꾸만 눈을 감았다
떴다
세계가 이토록 파란 것이었다니
그와 눈빛을 주고받은 적 없는 비평가들이
그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했다
그를 버렸던 사람이
그의 일기장을 구해 와 돈 받고 팔았다
아무도 그의 눈을 보지 못했다
그의 앞에서
한 사람만이
그와 눈을 맞췄다
블루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질병을 발견하고
그에게 감사하며
은빛 동전을 그들 손에 쥐여주고
일기장을 품에 안고 나와
새파랗게 추운 거리를 가로질러
눈보라 속
집으로 갔다
추위와 굶주림과 기쁨이 기다리는
계단을 쓸고 닦고
블루
블루
블루
한밤
그의 모든 자화상이
동시에 영원히
눈을 감았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오직 한 예술가만이
빗자루를 세워두고
품에서 일기장을 꺼내
기록해두었다
먼 훗날
그도 병에 걸려 죽었다
그의 이름이
그 유명한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현 - 형들의 사랑 (0) | 2020.11.15 |
---|---|
김현 - 성탄 전야 (0) | 2020.11.15 |
김현 - 가장 큰 행복 (0) | 2020.11.15 |
김현 - 겨울은 따뜻한 과일이다 (0) | 2020.11.15 |
김현 - 사랑을 맛보는 혀는 어찌나 붉은지 (0) | 2020.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