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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 사랑을 맛보는 혀는 어찌나 붉은지

 

호시절:김현 시집, 창비 아무튼 스웨터:올해 서울의 첫 스웨터는 언제 관측되었을까?, 제철소 입술을 열면 걱정 말고 다녀와:켄 로치에게, 알마 문학과지성사 글로리홀 - 김현 시집, 단품

 

 

 그것이 알고 싶다

 

 밤마다

 넣고 빠진다

 

 부부는

 믿음을 위해 체력을 단련한다

 

 가난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자

 개도 없이 고양이도 없이

 어항도 없이 화분도 없이

 아이도 없이

 

 진실로 먹고살 만하면

 거리의 동물을 돌보고

 남의 아이에게 덕담과 지전을 건네주고

 삼촌들은 같이 살아

 부부는 정기적으로 동성 캉캉

 

 믿습니까

 믿습니다

 

 생명을 만들지 못하면서도 생명력을 쓴다

 

 대홍수 속에서 살아남은 자와

 대지진 속에서 살아남은 자가 한집에 살았나이다

 

 물이 많은 사람과 흙이 많은 사람이 자꾸 몸을 섞어

 집 안이 온통 진흙투성이였나이다

 

 그 진흙 구덩이 속에서 꽃이 피고

 두 사람은 그 꽃을 애지중지 길렀으나

 

 어느날 사람이 되어

 대벼락을 맞고 꽃은 죽었나이다

 

 오늘 죽이지

 오늘 죽이는데 

 

 신께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밤의 일이란 그렇고 그런 거라고 말하는 사이

 부부는 서로의 뱃살을 덥썩 깨물어주고

 등을 돌리고 기도한다

 

 우리가 또한 이토록 저질이나니 이 저질 속에 복됨이 있음을 믿나이다

 

 나를 믿어서 너를 믿지 못하고 있다

 

 부부는 일어나 양치하고

 혀를 길게 빼고

 자정이 넘어 조용히

 분류하러 가는 부부를

 끝으로 본다

 

 한 사람을 종이류 자루 속으로

 한 사람은 공병류 자루 속으로

 

 넣고

 빠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