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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 진실하고 성실한 관계

 

호시절:김현 시집, 창비 아무튼 스웨터:올해 서울의 첫 스웨터는 언제 관측되었을까?, 제철소 입술을 열면 걱정 말고 다녀와:켄 로치에게, 알마 문학과지성사 글로리홀 - 김현 시집, 단품

 

 

 그는 죽었다 살아났다

 

 심연을 가늠할 수 있었지만

 뒤늦게 그는

 자신이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자신 깊은 곳 어디에서도

 빛을 찾을 수 없었다

 

 영혼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는 자신이 죽어 있던

 병원으로 갔다

 

 어둠으로 성실한

 식물인간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은 손대지 않았고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것은 보지 않고 듣지 않았다

 걷는 일도 삼갔다

 영혼을 탐구했다

 인간의 눈에 드리워진

 오랜 시간이었다

 

 마침내

 그는 백발이 되어서

 한 사람의 눈동자에서

 잃어버린 영혼을 보았다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야기했다

 모든 헤어짐에 관해서

 시간을 되돌리며

 

 심장에서 멀어졌던 그가

 그의 입과 코에 붙은 것들을 떼어냈다

 물이 떨어졌다

 진실로

 그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흐리고 진하게

 

 그는 그의 곁에 누워

 눈을 감고

 영혼을 기다렸다

 시간이 멈추기를

 

 검붉은 손이 침대 밖으로

 떨어졌다 창 너머

 잎사귀 한잎

 짧은 입맞춤

 

 그는 병원을 빠져나갔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 그녀에게 들려줄 만한 몸을 썼어요 그녀를 안심시킬 수 있는 손에 관해서죠 그녀는 당신을 만질 수 없고 당신을 느낄 수도 없지만, 그녀에게 몸이 있다면 당신의 영혼을 바칠 수 있을 테니까요 들을래요? 거짓이라도 듣지 않을래요? 사실상 사라질래요? 진하게 한모금 나타날래요? 흐리게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