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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 눈앞에서 시간은 사라지고 그때 우리의 얼굴은 얇고 투명해져서

 

호시절:김현 시집, 창비 아무튼 스웨터:올해 서울의 첫 스웨터는 언제 관측되었을까?, 제철소 입술을 열면 걱정 말고 다녀와:켄 로치에게, 알마 문학과지성사 글로리홀 - 김현 시집, 단품

 

 

 두 사람이 걸어가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는

 

 눈 쌓인 진부령을 넘어가며

 멀리서 가만히

 이쪽을

 보는 것을 보았다

 

 부모였다

 

 민박이라는 글자가 붙은 창문

 아래에서 반짝이는 것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어느 땐가 눈이 많이 와

 저 숙소에 짐을 풀고

 아이를 갖게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눈은 내리고

 어둠 속에서 촛불 앞에 발가락을 모으고

 두 사람은 두 사람밖에 보지 못하지만

 끝없이 같은 곳을 바라본 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렇게 빤한 인생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민박에서 해야 할 것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고

 눈은 참으로 근사하여

 멀리서 가만히

 아무것도 없는 쪽을 보아서

 슬픔에 눈을 뜨는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 때문에 탄생해

 이쪽에 서 있게 되는 사람에 관하여

 

 약속하지

 남자는 말하고

 약속할게

 여자는 말하고 

 두 사람은 창문을 두 사람에게로 옮겨왔을 것이다

 

 그 깨지기 쉬운 것을

 

 이것이 부모의 사랑 이야기고

 부모에게서 만들어진 이의 사랑 이야기이다

 

 민박하였다

 

 터무니없게도

 딱 한번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한 사람이 마침

 나를 보게 되고

 

 

 

 ○ 눈보라 속에서 저기, 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자 인종이 다른 한 사람도 아, 저기,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켰다 두 사람은 그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고, 한 사람이 먼저 말을 꺼냈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봐요 사랑에 관한 그 모든 말 끝에 하지만 나 혼자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걸요 한 사람이 말을 이었다 눈보라 속에서 바람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고, 모든 게 선명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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