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얘,
저기 구석에 앉아 있는 애는 누구니
희잖아
희
응
걘 작년에 죽었잖아
그러게 죽지도 않고 또 왔네
2
희는 썼다
개강총회에 가고 싶다
가서 씁쓸하게 앉아 있다가 오고 싶다
그래서
희를 보냈다
희는 개강총회에 가서
아는 얼굴이 있나 보았는데
모두 아는 얼굴이었다
다들 그대로
늙었구나
포기할 건 포기하고
몹쓸 걸 많이 먹고
제대하고 돌아온 복학생들처럼 더러워졌구나
희야
그런 씁쓸한 얼굴은 집에 두고 와야지
어디까지 가지고 와서
이래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없고
희는 혼자
자신이 저주받은 학번인지 아닌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복학생 선배는
대학원에 와서도 상명하복으로
빤쓰를 내리고
지도교수 앞에서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차렷할까
박교수도 그래
지가 지도교수면 지도교수지
우리가 이삿짐센터 직원은 아니잖아
김교수도 그래
문학상 심사 보는 게 무슨 벼슬이냐
희야
선생이 권력이야
선배 그 냄새나는 얼굴 좀 치우고 말해요
너는 선배 알기를 우습게 아냐
어린 새끼가
어린 희는
개강총회에서 생각했었다
개강총회는 왜 하는 걸까
다 고만고만한 것들이
무슨 큰일이라도 하는 듯이
희를 앉혀놓고
95학번 선배는 말했다
등록금삭감투쟁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자본주의의 노예냐
시가 뭐냐
어리고 무식한 새끼구나 너는
신입생입니다 저는
그 선배도 이제는
배가 나오고
아들딸을 낳고
아내 보기를 돌같이 보고
동창들과 동남아로 가서 어린애들과 쓰리썸 할 생각
그런 생각을 가지고
희
너는 왜 매년
개강총회에 오는 거니
같이 망해가는 꼴을 봐야지
3
희는 쓰다 말고
두 손을 모으고
눈부시게 환한 곳을 올려다본다
너는 내 눈을 너의 거울로 쓰는 것이냐
전체가 보이느냐
희는 자신의 전체를 본다
어머니
인류를 거두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희야
그런 냄새나는 얼굴은 집에 두고 와야지
어디까지 가지고 와서
4
이래
희는 썼다
축제에 가고 싶다
중앙 분수대에서 말해줘야지
선배들은 미래에도
다 그렇게 고만고만하게 살다 죽어버려
그래서
희를 보냈다
5
영원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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