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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 내가 새라면

 

호시절:김현 시집, 창비 아무튼 스웨터:올해 서울의 첫 스웨터는 언제 관측되었을까?, 제철소 입술을 열면 걱정 말고 다녀와:켄 로치에게, 알마 문학과지성사 글로리홀 - 김현 시집, 단품

 

 

 걸어다닐 수 있겠지

 겨울 갈대숲을

 

 황량한 곳

 정신이 깨끗한 손가락으로 턱을 괴는 곳

 

 가끔 진흙탕에 발이 빠지기도 하고

 삶이 진창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이의 어깨 위에서 알려줄 수 있겠지

 

 어둠 속에서 진흙이 다 말라

 떨어질 때

 포르릉 사랑하는 이의 정신 속에 있는

 진리의 나라로 날아가

 갈대숲에 남기고 온 발자국을 노래할 수 있겠지

 

 흙으로 만든 지혜의 징검다리와

 그 사이로 몇번씩 개입되는 슬픔과

 무리 지어 서쪽 하늘로 사라지는 고독을

 부모는 죽고 죽은 부모가 살아생전 모셨던 믿음이 깨지고

 그때

 우리가 얼마나 불효자식들인지

 당신이 옳아요

 당신의 팔다리와

 당신이 죽은 고양이를 그리워하며 흘리는 눈물이

 그 고양이가 통째로 잡아먹은 당신의 새가

 

 내가 새라면 날 수 있겠지

 단 한번의 날갯짓으로

 검은 비 떨어지는 창공으로 날아올라

 추락을 살 수 있겠지

 

 겨울 갈대 숲

 발자국 위에서 볼 수 있겠지

 멀리

 날아가는 한마리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