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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 형들의 사랑

 

호시절:김현 시집, 창비 아무튼 스웨터:올해 서울의 첫 스웨터는 언제 관측되었을까?, 제철소 입술을 열면 걱정 말고 다녀와:켄 로치에게, 알마 문학과지성사 글로리홀 - 김현 시집, 단품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죽은 생선을 구워 먹고

 살아남기도 하는 사이니까요

 

 허나

 형들의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

 

 그들의 인생이 또한

 겨울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는 것이며

 

 그들의 인생이 또한

 영혼의 궁둥이에 붙은 낙엽을 떼어주는 것이며

 

 그들의 인생이 또한

 자식새끼 키워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속 깊은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느님

 형들의 사랑을 보세요

 

 점심에 하기 싫으면 저녁 먹고 하자

 당신에게 말하고 노래하며

 살구를 씻었습니다

 기다려 내 몸을 둘러싼 안개 헤치고

 투명한 모습으로 네 앞에 설 때까지

 살구를 깨물고

 과실 속에서 튀어나온 아내라는 시를 윤문하였습니다

 여름비 잠시 멈춤

 어제 본 아내의 내면은 주먹과 보자기

 아내는 미나릿과에 속하는 얼굴로 창가에 앉아 담배를 피웠습니다

 

 살구씨를 한쪽에 모아놓고

 그들은 과연 하였습니다

 밤마다 꿈속으로 가는 아내의

 관자놀이에 거머리 여러마리를 놓아 꿈을 빨게 하였습니다 

 

 하여간 인생은

 끝과 시작

 형들의 슬픔은 점점 커지고 배가 나오고

 형들의 기쁨은 점점 넓어집니다 머리가 빠지지요

 

 그들은 21세기

 그들은 조선시대에 있습니다

 숯불을 사용하고

 돼지고기를 익혀 먹고

 푸른 군락이라는 방식에 엎드려 있고

 그런 생활사 속에서

 헛수고를 물리치고

 각자의 이불 속에서

 역사적인 순간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물러나십시오

 광화문에서, 금남로에서, LA한인타운에서

 옆사람의 꿈나라

 우리들의 천국

 주저앉고 싶은 유혹도 많지만

 존경과 사랑을 담아

 등을 돌리고

 들어봐

 아내가 믿는 하느님의 나라는

 미나리 한상자

 들어봐

 시에 길라임을 넣어야겠어

 

 그들은 서로를 사회합니다

 겨울은 촛불잔치

 영혼의 대자보는 떨어져나가도

 없는 자식인 셈 치고

 시간을 설득합니다

 안개를 헤치고 먹고사는 노부모처럼

 또한 그들의 투쟁이

 살구 한알에서부터 시작되고요

 

 하느님 

 형들의 사랑을 보세요

 

 허나

 형들의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