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개를 끌고
아픈 사람을 생각하며 걸었다
걷는데
개가 자꾸 짖어대는 통에
개새끼야 조용히 좀 해
아이는 말해버리고 말았다
아이를 올려다보는
개의 콧잔등에
눈이 내려앉았다
개는 또 짖었다
희디희게 짖었다
개새끼
아이는 개를 쓰다듬어주고는
아픈 사람에게 줄 눈송이를
깊고 검은 곳에 담았다
엄마는 만두를 좋아해
평화로운 사람
아이는 개를 끌고 가다가도
멈칫 저 아래
있는 것을 들여다보았다
흘러가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인간사인 줄도 모르고
아이는 냄새 맡고
아픈 것들을 생각했다
욕하는 나의 마음
개는 아이를 끌고 가다가도
멈칫 위에 있는 것을 보았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네발을 내려놓았다
그것이 인간사
성당 앞을 지날 때
아이는 남자 둘이 손을 꼭 잡는 것을 보았고
왼편에 선 사람이 아픈 사람이구나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잡아주는 사람이니까
고기만두는 엄마 다 주고
라면을 부숴 먹자
개는 아이보다 먼저 집으로 뛰어갔다
그곳에 아픈 사람이
자신을 더 많이 쓰다듬어주는 이가 있기에
아이는 집 앞에 다 와서
끝내 자기 마음에서
만두 하나를 꺼내 먹었다
눈송이들이 녹아서 물이 흥건했다
새벽송을 준비하러 가는 아이들이
너무 웃어서
울먹거려서
아이는 먹던 걸 뱉고 집으로 들어갔다
개가 나와 그걸 깨끗이 치워주고
아이들은 그런 개를 쓰다듬으며
귀엽다 예쁘다 메리 크리스마스
개도 사람도 모두 사라진 곳에
만두 냄새
두 남자가 아무래도 같이 사는 남자들이
깊고 검은 곳에
하얀 것을 담고 걸어오고 있었다
전생에 개였나봐
조용히 해
○ 아이들이 문을 두드리자 아이가 나왔다 아직 안 자니? 엄마는 자요 여기, 아이가 깊고 검은 곳에서 하얀 것을 꺼내 아이들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들이 그걸 조금씩 나누어 먹고 노래 부르고 아이에게 단 것과 달지 않은 것을 전해주었다 그때 개가 아이 곁으로 와서 사납게 짖었다 오늘은 아이를 데려갈 수 없으니 돌아서시오! 아이는 조용히 해,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지나치게 빛나던 아이들이 사라지고 아이는 혼자가 되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리 와, 이리 와 자자, 하며 개를 계속 불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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