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비둘기 한 마리를 본 후로
바깥은 없다.
비 맞는 주검을 보면서부터
마음은 시종 비를 맞고 있다.
칠월엔 모든 것이 흘러넘친다.
토사는 주택가를 덮치고
우듬지까지 뻘로 칠을 한 강변의 나무들.
강이 토한 자리에서 진동하는 바닥의 냄새.
맞은 자릴 또 맞는 사람의 표정으로,
세간은 모두 집 밖으로 나와 비를 맞는다.
집에 앉아서도 비를 맞는 사람 대신
씻다 씻다 팽개쳐둔 흙탕을
조용히 지우는 것도 빗줄기.
혈흔처럼 씻겨내려가는 흙탕물을 본다.
훼손되는 범죄현장을 지켜보는 수사관의 심정으로
흔적을 지우는 흔적을 본다.
아픈 자리는 또 맞아도 아프다.
내리꽂히는 빗줄기.
쇠창살 같은 빗줄기.
이제 그만 이곳을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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