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로잡은 것은 하나의 질문이었다.
나와 당신을 구성하고 있는 동일한 물질과 다른 영혼,
가령 같은 재료가 어떻게 맛의 차이를 만드는가.
해발 삼천 미터의 고원에서부터 커피의 제련은 시작된다.
미식가들이 루왁커피의 깊은 맛을 상찬할 때
루왁고양이는 숨 쉬는 작은 용광로가 된다.
열매에 바쳐진 모든 화학적 근원을 체험한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후 참외를 맛보는 방식으로
쇠똥구리가 되어 쇠똥의 맛을 느낄 때까지.
쇠똥구리의 허기와 식욕을 구분할 때까지.
깊은 맛을 얻고자 한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자갈 마당을 달구는 태양의 인내가 필요하다.
매운 연기로 눈을 비비는 구름의 눈물이 필요하다.
뜨거운 자갈 위로 떨어지는 소나기에선
비릿한 강의 맛, 바다의 맛, 물고기들의 맛이 난다.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닌 향기였다.
하늘에서 중산모를 쓴 남자들이 떨어져내릴 때
나는 빗방울들의 다른 표정과
그 표정을 읽고 있는 우울한 사내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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