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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승 - 얼굴의 탄생

 

친애하는 사물들:이현승 시집, 문학동네 생활이라는 생각 : 이현승 시집, 창비

 

 

 아무리 거대한 풍선일지라도

 바늘 끝만큼의 면적이면 충분하다.

 얼음 아래로 지나간 물고기 그림자처럼

 터지기 직전의 풍선에는 어떤 표정이 있다.

 

 잔뜩 피가 몰린 얼굴로

 아이가 풍선을 불 때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풍선의 표정으로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일촉즉발이란 이미 충분하다는 말.

 바늘만큼도 더할 수 없다는 뜻.

 단 한 호흡의 공기면 족하다.

 

 번개가 치고 천둥을 기다리는 몇 초의 하늘.

 제 소리에 놀라 잠시 울음을 멈춘 아이처럼

 최초의 폭발과 다음 폭발 사이의 분화구.

 지진과 해일의 사이의 해안가.

 

 붉은 눈물들은 실금을 채우며 넘친다.

 검은 구름들이 마침내 중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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