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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우 -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 외 5편 (2019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

 

 별이 깃든 방, 연구진들이 놀라운 발견을 했어요 그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별 가운데 가장 크기가 작은 별을 발견했습니다 그 크기는 목성보다 작고 토성보다 약간 큰 정도로, 지구 열 개밖에 안 들어가는 크기라더군요 세상에 정말 작군요, 옥탑방에서 생각했어요 이런 작고 조밀한 별이 있을 수 있다니 하고 말이죠 핵융합 반응 속도가 매우 낮아서 표면은 극히 어둡다고 합니다 이제야 그늘이 조금 이해되는군요

 이 별의 천장은 매우 낮습니다 산소가 희박하죠 멀리서 보는 야경은 아름다울지 몰라요 어차피 낮에는 하늘로 추락하겠지만 그래도 먼지가 이만큼이나 모이니 질량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겠군요 그건 괜찮은 발견이에요

 먼 곳에서 별에 대해 말하면 안 돼요 다 안다는 것처럼 중력을 연구하지는 말아야죠 피아노 두드리듯 논문을 쏟아내지 말아요 차라리 눈물에 대해 써보는 게 어때요 별의 부피를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둘레를 더듬는 일이죠 옥상 난간을 서성거리는 멀미처럼 말이에요

 여기 옥탑에서는 중력이 약해서 몸의 상당 부분이 기체로 존재해요 그래요 모든 별들은 항상 지상으로 언제 떨어질지 숨을 뻗고 있는 거죠

 

 

 

 <자하와 예언>

 

 자하가 태어나던 날 예언이 있었다네 알다시피 행복한 예언이란 없으므로 오래된, 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쯤 사람들은 자하의 저주를 알게 되었다지 자하가 어디로 갔는지 추측하기 위해 별자리가 만들어졌다네, 각자의 자하가 다르므로. 그래서 별들은 혼자 있을 때만 쏟아진 것이고, 손목의 핏줄 그대는 오늘 또 세어본 것이지. 허 지금껏 별들을 가리킨 그 무수한 손끝들이라니 그래서 자하는 떠난 것이네 북극을 찍고 남극을 찍어도 자하는 나타나지 않았던 거고. 이야깃거리 하나를 위해 오늘도 우리는 별자리를 만들어냈단 말이지, 저 별들의 독존성을 기어이 우리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말았단 말일세 이제 그만 자하를 내버려두게

 자하, 태어난 적이 없다네 양피지가 시간이라는 마법을 뒤집어쓰면 꿈인지 일기인지 알게 뭔가, 전설이나 예언쯤 되는 것이지 그러나 그것들이 어디로 생을 옮기는지. 보게, 내가 이렇게 말해도 그대는 아직도 자하를 찾고 있지 않은가 내가 말한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게 뭔가 어차피 그대 눈동자는 계속해서 별을 묶을 것이네 타자의 눈동자보다 모닥불에서 자하를 찾을 것이고 거실보다 다락방에서 무릎을 더 많이 끌어안겠지

 그래도 언젠가는 자하에서 벗어나야 함을 잊지 말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예언은 없는 것처럼 양피지의 끝은 언제나 저주를 담고 있으니. 렌즈에 담긴 허상에 속지 말게 언젠가는 두 눈으로 셔터를 눌러야 하네 

 

 

 

 <서울, 인디언>

 

 말을 만들어 짚어가는 것 갈기를 휘날리며 박차를 가하는 일 모두가

 흙먼지만 남기고 내 뒤에 꼬리표를 다는 일이었네

 초원 깊은 곳을 볼 때면 문득 소름이 돋는다네, 침묵이기에.

 버펄로 한 마리를 죽이면 인디언 열 명이 죽는다네

 

 의자에 앉으면 누군가 계속해서 엉덩이를 때리는 기분이 들었네

 라코타, 라코타, 추위를 피하기 위해 말의 내장을 빼야 하네

 서울이 쌓아올린 무의식은 표정이 없었다네 초원을 찾아야 해

 뜯어진 발굽을 신었지 제일 먼저 구두 뒷굽이 까졌네

 몸에 맞지 않는 것들은 뒤통수에 상처를 낼 테니

 응, 달리기는 내게 맞지 않으니

 영혼을 먼저 돌보아야 했다네

 

 서울은 암막 커튼처럼 깊게 출렁이네

 지하철에서 폐허의 소식이 빠져나갈 때

 낮은 하늘로 말발굽 소리가 울렸지

 실패한 인디언, 땅을 지켜내지 못했으므로

 나도 주변인처럼 옷을 입어야 하나

 벌거벗은 나는 서울을 향해 중얼거렸네

 

 보호구역을 탈출한 인디언에 대해 말해주게

 말이 일으킨 떨림에 대해 말해주게

 그 외의 진동은 모두 슬프다 전해주게

 고장난 가로등은 밤에만 눈에 띄고

 나는 진창이 아닌 곳에서 발자국 만드는 법을 모르네

 

 더 이상 서울에서 인디언을 찾을 수 없네

 어쩌면, 별자리의 실종과 관련이 있을지 모르네

 멸종한 버펄로를 위해 불을 피우세 

 

 

 

 <중환자실>

 

 낙타는 다리에 오줌을 적셔 살아남았다지

 사막에서 잠든 미이라는 영생을 얻었을까

 계속해서 무너지면 변덕도 일관성을 얻겠지

 사막을 횡단할 땐 나침판을 잃어버려야 해

 이곳은 똑바로 걸어도 헤맬 수 있어 좋았는데

 

 길을 잊고 싶은 자들이 펼쳐지면 사막이 되지

 내 발자국이 너의 언덕에서 지워지는 시간

 모래가 지평선의 모습을 바꾸면

 기계음과 함께 세상이 자꾸만 깜빡거린다

 점성술은 사막에서 태어났을까

 밤마다 너는 내게 하늘 보는 법을 가르쳤었지

 

 네 가슴 속에선 물이 자란다

 우리는 모두 비밀이 자라던 아이였으니, 신기루라 말해볼까

 

 사막이 유적을 미처 치우지 못한 것과 상관없이

 사막이 죽은 이의 표정을 지우지 못한 것과 상관없이

 미이라처럼, 사랑이 박제로 끝나기를 기다려볼까

 

 길게 펼쳐진 무표정을 쓸어보았을 뿐

 사막은 깨져 나간 모래시계처럼 의도 없이 흐르고

 별점의 끝에서 우리는 무엇이 되었을까

 아지랑이는 언제나 가장 뜨거운 것들을 흔들고

 벽 없는 미로를 걸을 때, 땀에도 모래가 배여있었는데

 

 몸에서 전기가 하나씩 끊길 때마다

 우리의 꿈도 조금씩 소등되는 거지

 거대한 병실에서 당신의 피가 달궈지는 동안

 속눈썹이 길게 자라났고 그림자는 짧았지만

 넌 누구보다 내 발자국을 깊게 파주었는데 

 

 

 

 <오줌싸개 병동>

 

 수문 안에는 수백 갤런의 물이 차올라있어

 나는 노련한 기술자처럼 배수량을 조절하지

 폭우도 침묵이 되는 곳 표면이 떨리는 것을 보고 있어

 배설하지 못한 물음표가 밖으로, 밖으로 밀려나오면

 쭈그려 앉아 오줌 냄새를 맡는 것이 사랑인지 묻고 싶어져

 눈물도 역행시키는 댐의 기술로 운하를 건설하면

 욕조에 물이 차오르듯 너는 반듯하게 깊어져 간다

 너의 손바닥이 내 가슴께를 치며 차오를 때

 간문과 수문을 이용해 수위를 조절해야 하지

 나는 계속해서 딱딱한 돌을 쌓아올린다

 밑바닥엔 수로를 깔아두었어, 길고 어두운 통로를.

 

 스물다섯 개의 침대에서 배수관이 발견됐어

 잠이 들면 울컥대는 네 하반신을 받아내야지

 위생 장갑을 낀 두 팔이 밤을 젓는다

 양동이 안에서 묽은 얼굴이 철렁거리면

 너는 또 장난감처럼 우울을 만지작거리겠지

 

 날씨가 알약 두 개로 개어진다

 너의 웃음을 환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수압이 평등한 무게로 짓누를 때

 먼저 막히는 건 항상 목구멍부터지

 

 인간의 연대기를 적어둔 동상이 입을 벌린다

 덩굴이 최초로 자라난 순간을 물어온다면,

 그건 담벼락이 생겨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 거라고

 말해둘게, 폭염과 가뭄이 오기 전까지 

 

 

 

 <개미집>

 

 페로몬을 따라가는 개미들의 교통체증

 보이지 않는 곳에도 길은 있어서

 조금 잃어도 괜찮겠다

 꿰어놓은 자리마다

 서로의 체향이 너무 진득하게 이어져 있으므로

 

 오래전에 죽은 하얀 나무를 떠올렸을 때처럼

 바늘은 순식간에 눈을 뚫고 들어가 단추를 꿰어놓는다

 흰개미가 부서진 달의 조각을 물고 집으로 귀가하는 밤

 난 실과 바늘을 꺼내 뜯어진 피부를 기워내고 있었다

 

 자꾸만 몸이 쏟아졌다. 바늘은

 안과 밖을 끊임없이 관통하며 지나갔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내 이별의 방식이라

 나는 계속해서 구멍이 난 자리만 찾아 이어나갔다

 

 때때로 불어온 바람은 유독

 상처난 것들을 집요하게 핥는 습성이 있다

 혀로 너의 뼈들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혓바늘이 돋아났다 밤마다 네가 지른 비명은

 네 나름의 박음질이었을까 몸을 찌를 때마다

 너는 계속해서 몸을 꿰매고 있었다

 

 꿰맨 자리마다 벌레가 웅크리고 있다

 너는 벌레가 사는 집이 되고 만 것 같아

 하얀 꽃이 삐져나온 구멍 주위로 온통,

 벌레가 만발하고 있었다 

 

 

 

 <당선 소감>

 

 최근 몇 년 동안, 옷을 많이 사 입었다. 계절마다 한두 벌로 버티던 내가 술값도 아껴가며 옷을 많이 사 입었다. 유명한 메이커도, 그다지 재질이 좋은 옷들도 아니었지만 검은색 일색이던 내 옷장에도 여러 색깔의 옷이 늘어갔다. 옷을 바꾸니 밖을 나가는 횟수도 많아졌다. 만날 사람이 없어도 공연히 새 옷을 입고 번화가로 나갔다.

 인터넷에서 산 옷들은 몸에 맞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굳이 수선하거나 하지 않고 밑단을 접어 올리거나 허리끈을 조여 입었다. 그렇게 몇 벌의 옷을 버리고 나서야 옷을 보는 눈이 조금 생겼다. 점점 몸에 맞는 옷들이 늘어갔다. 그렇게 옷장이 채워지듯, 올해도 나는 계속 시를 쓰고 있었다.

 

 

 

 <심사평>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는 완성도가 상대적으로 미진한 대신 참신성이나 발전 가능성은 더 높게 보였다. 여기서 심사위원들은 숙고의 과정을 거쳐 신춘문예 본래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참신성을 더 높이 평가하기로 하고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이 시는 질량이나 중력, 기체 등 자연과학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이를 어색하지 않게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다. 옥상 난간을 서성거리는 화자가 가장 작은 별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생의 구체성의 부여인 동시에 시적 확장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심사위원들은 의견이 일치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아깝게 탈락한 분에게는 격려의 말씀을 전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