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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진 - 엄마는 저렇게 걸어오지 않는다 외 5편 (2019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엄마는 저렇게 걸어오지 않는다>

 

 예순두 살에 뽀얀 속살입니다 시야각으로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다 벗고 만날 수 있고 온몸을 훑고도 괜찮아요 엄마는 때수건과 우유를 손에 들고 옵니다 우리는 깨끗해집니다

 

 두꺼운 발톱과 무좀을 병이라 부릅니다 탕의 수증기는 소리와 이야기를 불러 모읍니다 "그 발톱으로 네일 숍에 왔대" 동료들이 웃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엄마 얘기만 합니다 아빠 얘기만 하는 동료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없니?" 질문은 되돌려집니다 알고도 모르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동료를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아차 하면서 재채기처럼 웃었습니다 자꾸 새어나오는 웃음만큼 웃음거리들이 쉽게 배어나오는 회사입니다 제가 오늘 재채기를 했던가요

 

 바디 클렌저에서 수영장 냄새가 납니다 미즈노 루리코의 헨젤과 그레텔의 섬이 떠오릅니다 카페 화장실 앞에서 스콘을 먹어야 했어요 열고 닫히는 문은 섬이었다가 여름이다가 코끼리였습니다 삼십 분 동안 읽었는데요 시 한 편을 오래 보았습니다

 

 매일 달라지는 책을 동료에게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쓰는 몰입을 알 리 없어요 동료가 농담을 던졌습니다 "등단을 못 하겠구나" 엉뚱한 발언을 잘하는 저의 별명은 소설가입니다 "시를 씁니다" 말하지 않아요 동료들은 알고도 모르는 것일까요

 

 "친구들은 어때요?" 하면 엄마가 떠오릅니다 저의 벗입니다 같은 원 안의 피자를 먹고 다른 날 같은 구두를 신습니다 즐거운 시간은 떼어두었다가 서로에게 선물합니다 기억이 풍성해지면 쪼그라드는 현재들 진짜 벗들은 기억의 원 안에 있어요

 

 항공사가 부도 직전이라는 소문이 돕니다 엄마는 키위를 반으로 자릅니다 포도를 씻고 귤을 깝니다 키위의 씨만큼 늘어나는 의혹들 과일 열한 통을 들고 출근합니다 회사일까 집단일까 궁금합니다 급여가 돌아오지 않았으니 과일은 엄마에게 달아두는 외상입니다

 

 조금만 당돌해집시다 구호가 필요합니다 동료는 잘난 척을 하다 동료들에게 혼쭐이 났습니다 저도 잘난 척의 기질이 있습니다 그러니 많이는 말고 조금만요

 

 늙어도 우리는 무섭습니다 엄마는 겁보입니다 매일 밤이 오다니 엄마는 차를 몰고 저를 데리러옵니다 보조석의 방석은 꽃무늬입니다 여성이 되기 위해 꽃을 사들이고 무늬를 사들입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우아합니다 스무 살에 꾸었던 꿈의 일부를 이룬 것 같아요

 

 

 

 <그곳, 계절은 없다>

 

 엉뚱한 곳에서 즐거웠습니다 다 망해가는 여행이었습니다 서울 모퉁이의 휴게소, 휴게소 내부의 카페, 혼자 앉아 반짝이는 알전구들을 바라봤습니다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잎이 전구의 곳곳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툭툭 터지는 여행의 날들

 

 천장이 높은 서점에서 블라인드가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서서히 드러나는 바깥들, 머리카락이 서서히 입술이 서서히, 책들이 서서히였습니다 승용차를 파는 사람의 등이 보이고 파라솔 위로 빛이 가득했습니다 등 너머 계약서, 볼펜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커피를 파는 가게가 멀리 보였지만 희미했습니다 작은 사람들 더 작은 얼굴 더 작은 컵이 제 눈에는 보일 리 없었습니다 안경을 두고 나온 것처럼 눈을 전생에 두고 온 사람이라면 전생으로 가는 거리로 여길까요? 거리에서 눈을 뗄 때마다 찐득하게 눈에 붙던 빛이 계속 생각납니다 앞으로 몇 개의 빛을 가지게 될까요 마음을 관통할까요

 

 여의도 공원을 가로질러 걸었습니다 공원을 함축하고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꽃을 만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직장인들 사이 직장인이 걸어가고 직장인 옆으로 직장인들이 걸어다녔습니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꽤 넓은 신호등 앞으로 모였습니다 나무 그늘로 들어가는 사람을 따라가려다 그늘의 경계에서 멈췄습니다 저의 오장육부까지 빛이 전달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녹색등이 켜지면 마지막 무리의 마지막이 되어 걸었습니다 사람들의 등 너머를 보았습니다 여의도의 등을 보았습니다

 

 도와드릴까요?

 괜찮습니다

 혼자서도 잘한다는 마음은 오래되었습니다 씩씩함도 오래되면 낡는 것 같아요 1004호였습니다 커튼을 열면 은행과 국회의사당이 보였습니다 겉옷을 걸어두고 소파에 앉았습니다 TV는 켜지 않았고 거리의 소음이 한 차례 작아지며 새어들어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행이 여러 차례 작아지며 들어왔습니다 으깨져 눌어붙은 은행들이 오래된 잼 같았습니다 낡고 긁힌 것들을 따라다녔습니다

 

 

 

 <지푸라기>

 

 문을 열었을 때 지푸라기가 있었다 처음 본 것은 여름이었다 외출과 귀가를 반복할 때마다 지푸라기 밟는 소리를 들었다 해마다 지푸라기는 늘어갔다 때가 탄 인형들은 지푸라기를 보는 것인지 못 보는 것인지 복도에서 한창 통통했다 밟기만 하던 어느 날 지푸라기에 앉아 있었다 여름이었다 살에 닿을 때마다 쌀이 닿는 것 같았다 쌀에 앉은 것 같았다 쌀이 가득한 복도에서 쌀을 기다리는 자세 같았다 오래전부터 쌀을 기다려온 걸까 쌀에 빛이 내리고 쌀에 어둠이 내렸다 먼 아이들이 웃는 소리 얹히고 가까운 밥의 냄새도 기웃거렸다 쌀과 밥을 만지는 차이 지푸라기와 쌀의 차이 움직일 때마다 쌀이 굴러다녔다 대답 같은 알맹이들이 가득했다 쌀알을 믿는다 지푸라기를 믿는다 문을 믿는다 대문 앞 수많은 쌀을 믿는다 지푸라기를 보았다는 사람을 믿는다 여름에 쌀을 놓고 갔다는 사람을 믿는다 믿음이라는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지푸라기를 보았다 밥을 보았다 쌀에 빛이 내리고 쌀에 여름이 내렸다 쌀은 푹신해지고 눅눅해졌다 밥에 앉은 것 같았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옷이 끈적해졌다 밥알에 밥알이 붙는 것인지 몸에 옷이 붙는 것인지 땀이 흐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여름 위에 앉아있었다 햅빛 햅쌀 햅여름 헛것들이 보였다 산 인형과 없는 사람 그리고 살아있는 여름이 보였다 창밖으로 맑은 산이 보였다 바닥을 짚고 일어섰을 때 바지에 여름이 묻어있었다 

 

 

 

 <구슬>

 

 구슬이 있다 실이 있다 탁자가 있고 빛이 있다 빛을 손에 들고 구슬의 구멍을 만들어둔다 빛이 지나간 자리로 실을 넣는다 잘 들어간다 투명하고 푸른 구슬이다 구슬의 중심으로 실이 들어간다 바깥으로 나오는 실 깨지지 않은 구슬 끊어지지 않는 실 구슬들이 있다 첫 번째 구슬에서 나온 실이 두 번째 구슬로 들어간다 구슬의 중심과 구슬의 중심 세 번째 구슬에서 네 번째 구슬 탁자 위 모든 구슬 이어질 때까지 실이 끝날 때까지 구슬로 들어간다 구슬들이 거대한 원형이 되어가는 동안 여름의 빛은 꾸준히 탁자를 비춘다 실을 잡은 손이 구슬을 만져 구슬들을 잇고 있다 구슬이 굴러떨어진다 다음 구슬 다음 구슬 그리고 다음 구슬 차례로 떨어진다 구슬이 굴러가고 다음 구슬 굴러가고 모서리로 굴러가고 모든 구슬 다르게 굴러가고 마지막 구슬에 남아있던 실도 굴러간다 깨진 구슬 깨져 빛나는 구슬 금이 가는 구슬 단단한 구슬 먼지 묻는 구슬 멈추는 구슬 벽에 튕기는 구슬 구석에 박히는 구슬 발 앞에 멈춘 구슬 빠져나온 실이 마지막 구슬을 감고 있다 두 번 세 번 감다가 멈추는 실 멈춘 구슬 실을 지나가는 다른 구슬 또 다른 구슬 실에 감기는 구슬 구슬들 모두 멈추어 있다 탁자 아래 어디에나 구슬이 있다 빛에 놓인 구슬 반짝이는 구슬 머무는 구슬 그림자를 도는 구슬 많은 구슬 실제의 빛이 구슬의 중심을 다시 관통한다 조금 흔들리는 구슬 흔들림 없는 구슬 낮은 구슬 먼 구슬 걷기 시작하는 발 구슬 하나를 밟는 발 하나를 미는 발 다른 하나를 차는 발 다른 구슬에 닿은 발 발이 방에서 나간다 구슬들이 산다 깨진 구슬이 살아난다 구슬이 생기고 구슬들 몰려다니고 구슬이 부풀고 구슬들 빛을 당기고 구슬이 구슬에 붙고 구슬들 굴러다닌다 구슬이 많이 산다 빛 없어지는 시간 실제의 실 없어지고 구슬 없어지고 많은 구슬 없어지고 탁자 없어지고 모두 없어진다 있었던 것들 없는 것이 된다 문이 열리고 발이 방으로 들어온다 다른 구슬들이 들어온다 작아진 구슬 늘어난 구슬 찢긴 구슬 물든 구슬이 몰려 들어온다 없어진 구슬들이 계속 생기고 구슬이 구슬을 찾는다 구슬의 눈빛이 탄생한다 

 

 

 

 <촌>

 

 촌스러운 내가 촌스러운 할아버지의 옆을 지나간다. 할아버지는 촌스러운 의자에 앉고 나는 촌스러운 흙바닥을 걷는다. 촌스러운 쓰레기가 촌스러운 길에 촌스러울 만큼 많이 쌓여있다. 촌스러운 도로로 들어가 걷는다.

 

 촌에는 촌스러운 할머니가 살았다. 촌스러운 두렁길을 지나 촌스러운 이웃에게 계란을 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촌스러운 할머니는 촌스러운 김치만 좋아했다. 나는 계란을 촌스럽게 많이 먹었다. 계란찜을 좋아하지 않아요? 촌스러운 감나무 촌스러운 마당 촌스러운 냄새. 촌스러운 것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있었다. 촌스러운 버섯은 아주 많았다.

 

 빨리 죽는 것은 촌스럽지요?

 

 할아버지가 촌의 도로를 촌스럽도록 지긋이 본다. 촌스러운 간판 촌스러운 대야 촌스러운 가게. 촌스러운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지요? 멈춘 풍경은 촌스럽게 아름답지요? 아름다운 시간이 없어진다.

 

 촌으로 돌아오는 길 촌스러운 의자. 식사는 하셨어요? 촌스러운 밤 촌스러운 인사 촌스러운 날씨. 촌스러운 할아버지는 없고 촌스러운 할머니도 없다. 할아버지를 촌스러운 나는 모르고, 할머니를 촌스러운 할아버지는 모르고. 촌의 바람이 촌스러운 곳으로부터 불어온다.

 

 촌스러워진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계란을 쥐고 있다. 더 촌스러워진 나를 알아보겠어요? 할아버지가 없고 촌스러운 의자는 있고, 할머니가 없고 촌스러운 나는 있으니까요, 잠시 촌스럽게,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되고 나는 의자가 될 수도 있지요? 촌스러운 의자처럼 촌스럽게 안아드릴 수 있어요.

 

 촌스러운 할머니는 촌스러운 나에게 앉아있다. 

 

 

 

 <쌓인>

 

 어느 밤, 자동차 안에서 빵을 먹고 있을 때 차 뒤에서 모르는 남자가 쭈그린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를 엿듣는 건 아닌 것 같았지만 차에 바짝 붙어 있었다. 나에게 밀착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로의 대화가 잘 들리는 거리였지만 들리는 만큼 다 듣지는 않았다. 우리는 네 종류의 빵을 조금씩 뜯어 나눠먹고 있었다. 나는 너의 말을 조금씩 뜯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빵 조각과 말의 조각을 동시에 삼켰고 남자의 차 문이 활짝 열린 것이 보였다 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왜 우리의 곁에 쭈그렸을까. 모르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잘 보이지 않는 빵을 먹으며 생각했다. 매번 다른 모양을 먹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남자의 문장들이 시간에 따라 계속 달라지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쭈그린 남자를 남겨두고 떠나기 위해 실내등을 켰을 때 감색 스웨터 위로 너무 많은 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그대로 무늬가 된다면 나쁠 것도 없었지만 흰 설탕 가루를 묻히고 계속해서 달콤한 채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너답지 않아" 이런 너의 말은 나에게 자주 떨어졌다. 쉽게 떨어졌다. 불빛이 있었다면 나다운 내가 나에게 잔뜩 뿌려져 있을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남자는 보이지 않는 사람과 쉬지 않고 말을 했다. 계속해서 문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얼굴 보이는 대화와 안 보이는 대화가 함께 떨어지고 있었다. 쉽게 버려지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내려 수많은 가루를 털어냈다. 보고 싶은 만큼 다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는 그런 것들이 자주 쌓일 것이었다. 오늘은 쭈그린 사람의 발자국. 오늘은 밤의 가루. 바닥으로 떨어지면 없어지는 문장들. 가루를 털어내면서 잘 보이지 않는 바닥에 쌓여온 것들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의 오래된 자세를 내려보았다. 

 

 

 

 <당선 소감>

 

 눈이 내렸습니다. 택배 상자를 여니 작은 담요 두 개에 싸인 프린트기가 있습니다. 상자 몇 개로 구성된 저의 이삿짐, 그 마지막 상자가 도착했나 봅니다. 급히 요청한 것은 아니니 보내는 사람 자유의 선택이었을, 덤인 것 같아요. 이 프린트기로 출력을 했고 걸었고 무인 우편 창구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늘을 보존하고 싶습니다. "잠은 어떻게 자는 것이었더라?" 잠이 올 것 같지 않습니다.

 지금쯤 1월 1일이 제게 와 주어 고맙습니다. 주로 일하고 남은 시간을 엮어 읽고 쓰고 휴식하던 시간들. 빠른 결과를 바라기도 하는 세상에서 아주 천천히 쌓여가는 문학의 여정에 대한 이해를 바라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묵묵하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썼습니다. 이상하게 끝날 것만 같던 저의 이상한 시간들이 이상한 것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말 못하는 시가 수년 동안 침묵을 견디다 겨우 저에게 한 문장을 건넨 것 같은 사건입니다.

 시도 그간 저에게 무척이나 말 걸고 싶었던 것 맞죠? 영원히 읽으면서 영원히 쓰고 싶습니다. 

 

 

 

 <심사평>

 

 당선의 영예는 노혜진 씨에게 돌아갔다. 신춘문예 발표 시즌마다 들리는 비슷한 이야기를 노혜진의 작품은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다. 요즘 시가 시답지 않게 길다, 최근 시는 언어를 정제하지 못한다, 산문시의 경향이 한국시를 망친다 등등.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인가? 노혜진의 시는 분명하게 아니라고 답하는 듯하다. 가령 여성이 되기 위해 꽃을 사들이고 무늬를 사들입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우아합니다라는 다소 소설적인 문장은 시에 대한 평균적인 인식에 비해 길게 나열된 엄마의 특정되지 않는 성격으로 인해 그 의미가 넓어진다. 그렇게 우아해진 부분 외 나머지 것들을 더 궁금하게 한다. 나는 이런 전개를 시적이라 부르지 않을 자신이 없다. 경쾌한 발성, 산문 형식을 지탱하는 관점의 전환과 독특한 리듬감, 페이지 전반을 아우르는 페이소스.... 이 모두가 충분히 이미 시라고 부를 만했다. 요즈음 시가 아니고, 진짜 시.

 이번 심사는 예심과 본심이 함께 진행되었다. 시인에게는 전부라 할 수 있는 자신의 취향을 근거로, 다른 이의 취향을 설득하는 작업을 더욱 치밀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시와 시, 시인과 시인이 서로에게 육박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하여 새로이 등장한 노혜진 시인의 손을 잡고 시라는 것을 두고 벌이는 유구한 전쟁의 복판을 함께 걸어가도 되겠다 싶다. 앞으로 그가 이를 겸허한 돌파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