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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하 - 침착하게 사랑하기 (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몸에 든 멍을 신앙으로 설명하기 위해 신은 내 손을 잡고 강변을 걸었다 내가 물비린내를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빛과 함께 내려올 천사에 대해, 천사가 지을 미소에 대해 신이 너무 상세히 설명해주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이미 본 것 같았다

 반대편에서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걸어왔다

 저를 저렇게 사랑하세요? 내가 묻자
 신은, 자신은 모든 만물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저만 사랑하는 거 아니시잖아요 아닌데 왜 이러세요 내가 소리치자

 저분들 싸우나봐, 지나쳤던 연인들이 소곤거렸다

 신은 침착하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신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강을 보고 걷는다

 강에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강이 무거운 천처럼 바뀌는 것을 본다

 그것을 두르고 맞으면 아프지만 멍들지는 않는다

 신의 목소리가 멎었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연인들의 걸음이 멀어지자 그는 손을 빼내어 나를 세게 때린다

 

 

 

 <당선 소감>

 기운이 나지 않아 바닥에 붙어있을 땐 나를 저주하는 사물들과 나를 응원하는 사물들이 싸우는 상상을 한다. 이 생각을 할 땐 늘 나를 저주하는 진영이 우세한 형상인데, 사실 승패는 나에게 달렸다. 내가 기운을 내면 나를 응원하는 사물들이 이기니까. 그럼 기운을 내어 잠을 자거나 수업을 들으러 간다.
 이렇게 겨우 힘을 내어 살면 무엇이 되는 걸까. 무엇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아서 죽지 않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의식 과잉이라고 비웃음 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 죽기엔 아깝다. 글을 잘 쓰니까. 글을 잘 써서 발표도 하고 책도 내고 어린 내가 그걸 읽고 오래 간직하는 상상을 한다. 상상은 자유니까. 누가 이걸 하나하나 뜯어보며 아니라고, 그게 죽지 못할 이유는 못 된다고 따져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살 거니까.
 시 당선 소감을 써야 하는데 죽느냐 사느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나에겐 이게 비슷한 이야기인가보다. 사실, 시는 그냥 뜯어 쓰는 마스킹 테이프일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시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이든 쓸 거라는 말이다.
 


 <심사평>

 차도하 씨의 침착하게 사랑하기 외 4편이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골똘하게 보냈던 긴 예심 시간과 달리 본심에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만큼 탁월했다. 다소 작은 세계를 말하려는 듯한 제목과는 달리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용기가 돋보였다. 천진해 보이는 어투가 단단한 세계를 뒷받침하고, 너른 시선이 가벼운 문체를 단속했다. 이 같은 특성을 묶어 범박하게도 새로움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리라. 무엇보다 기성 시인 누구도 쉽게 떠올릴 수 없게 한 개성의 충만함이 눈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