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바람에 엉덩이를 얻어맞았으며 끝까지
울지 않아서 근심을 산 목구멍으로
기쁜 노루와 치욕스러운 노루 슬픈 노루와 웃는 노루 말고
여덟 번 다르게 읽어야 한다 노루라고 말해야 한다
완벽한 암흑 속에 이처럼 많은 눈동자가
빛을 깜빡이고 있다
속눈썹에 걸터앉은 난쟁이 우울
은으로 만든 포크와 나이프
살고자 하는 마음과 죽고자 하는 마음이
먹으려는 마음으로 챙챙 부딪친다
검고 드넓은 테이블 위에서
별들이 영혼의 스위치를 껐다 켰다 장난치는 것은
시간에 드라마를 추가하기 위해서다 인공위성은 과묵하게
환히 빛날 뿐 꺼지지 않을 뿐
대교 끝에 선 투신자가 몸을 던지는 찰나에
물위를 딛고 서는 기적을 꽉 붙잡는다
강을 구겨 신고 우뚝우뚝 걸어나가기 좋은 밤
여전히 같은 길가에 있다
붉은 우체통
속에서 쓰레기를 꺼내는 집배원과 함께
우체통이 사라진 거리에서도
회송 계획이 없는 우주여행에 자원한 탐사원들
송내역 승강장의 비둘기가 매일 같은 자리에 있는 것처럼
4-3 늘 같은 자세로 눈동자의 감성이 원하는 대로
기도하지 않는다
마른 무덤 앞에 쪼그려앉은 여자는
내일도 쑥을 뜯을 뿐 엉덩이를 반쯤 드러내놓고
환히 빛날 뿐 꺼지지 않을 뿐
노루라고 말해야 한다 여덟 번 다른 마음으로
마지막 서정을 미루어두며
한 남자가 마주선 여자의 어깨를 툭 치고 허공에 숟가락질을 하자
여자가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아 보여준다
밥 먹고 갈까? 좋지
그런 의미가 아닐 것 같은
그럴 리 없을 것 같은
말없이 그곳에 있다
붉은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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