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긁을 수 없어서 그렇다
가려움이 발생하는 지점을 그려놓은 약도
그걸 박박 찢으며 태어나는 바람에
목구멍은 오직 연명하는 방법만 궁리하고
밤에는 걸어 잠그니 도통 꿈을 흘릴 수 없지
숨죽이고 있으면 들린다 죽게 해달라고
물 밖으로 말을 꺼내놓는 물고기들
고기밥 너무 많이 주지 마라
낮에 엄마가 남기고 간 말이다
돼지와 돼지고기 사이엔 군침 흘리는 미식가가 꼭 있는데
물고기는 살아서도 물고기 죽어서도 물고기
엄마가 사랑하는 것들 중에
이름이 붙은 것과 아직 살아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지난달에 죽은 애들은 다니오
곧 죽을 이것들은 구라미인데
고기밥을 많이 주고 나빠지는 수질을 본다
몽땅 먹고 몽땅 싼다는 것일까
먹을 만큼 먹고 남겼다는 것일까
어떤 마음이건 열렬히 지지하겠다
어항을 돌본 대가로
펑리수와 효자손을 받았다 그래도
영혼을 긁을 수 없어서 가려움이 번지는 것이다
지느러미를 이리저리 비틀며 잠 못 드는
어항 속 구라미들
다시는 엄마의 살아 있는 것들을 돌보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날이 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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