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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영 - 두 마리 앵무새가 있는 구성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유계영 시집, 문학동네 온갖 것들의 낮:유계영 시집, 민음사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유계영 시집, 현대문학

 

 

 나의 묘비문은 나의 생애보다 개성적일 것이다

 처음으로 모국어를 정확하게 사용할 것이다

 

 정각의 날씨에는

 생전에 열어둔 새장 속에서 새들이 날개를 털 것이다

 

 부치지 못한 엽서들이 수신자의 눈동자에 맺힐 것이다

 아침 창문의 나뭇잎을 적시기 위해 비가 내릴 것이다

 잉크 위의 빗방울들은 자음만을 간직할 것이다

 

 옷소매를 씹은 적이 없어도

 골판지의 모서리 빤 적이 없어도

 그 맛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호랑이 카펫의 감촉을 떠올리는

 사라진 발바닥이 감미로울 것이다

 꽃은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만

 향기를 떠벌릴 것이다

 

 가벼운 지붕을 이고 흰 구름이 몰려와 비를 막아줄 것이다

 두어 명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닦아내지 않을 것이다

 

 이름에 걸린 주술이 깨질 것이다

 몇 걸음이면 살던 곳으로 갈 수 있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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