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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영 - 엔젤링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유계영 시집, 문학동네 온갖 것들의 낮:유계영 시집, 민음사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유계영 시집, 현대문학

 

 

 입술과 엄지손가락이 가장 먼저 생기더군요

 하마터면 슬픔이라고는 못 배우고 태어날 뻔했어요

 

 내가 나를 물고 빤 흔적이 쑥스럽습니다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쥐며

 

 너 같은 자식을 낳아라

 축생으로 태어나

 하루종일 먹고 하루종일 잊어라

 우리는 저주하기 위해

 주먹을 풀고 기도하는 손

 나도 내 다음이 기대가 돼요

 

 자, 달걀을 쥔 느낌으로 손을 쥐어보세요

 그래야 자연스럽습니다

 사진 속의 애꾸눈이가 남기고 간 빅토리

 

 손안에 가둔 알

 

 왜 가슴을 쓸어내렸을까요

 펼쳐진 손바닥은

 

 기차역 앞

 뚱뚱한 지갑을 엉덩이 포켓에 꽂은 사내들이

 아무데서나 흰밥을 밀어넣습니다

 

 방금 전에는 흰 구름이 흰 구름을 앞질렀는데

 

 나는 주먹을 풀었다 쥐었다 하며

 바람에 부러지는 나뭇가지를 보고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 열차에 오른 우리가

 풍경을 향해 흔들던 손바닥은 어디에 멈추었나요

 

 엄지손가락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흔들리던 그 손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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