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크는 일에 관해서라면 나도 조금 할 말이 있어요 허물어지는 계단을 달려와 단숨에 뛰어내리는 일 공중에 떠오를 때마다 킥킥 비행기가 된 것 같지만 폭죽처럼 온몸이 터지고 바닥엔 흩뿌려진 색종이들 나는 아름다운 착지를 꿈꿔요 옥상은 매일밤 높아져요
누군가 나를 찢고 달아날 때마다 나는 매번 다른 사람이 되지요 뺨이 붉은 소년이었다가 잇몸만 남은 노인이었다가...... 지금은 철길 위에 꼼짝없이 묶여 있네요 경쾌한 기적을 울리며 기적 없이 다가오는 것들 바퀴가 끌고 갈 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토막 난 허리를 상상하면 거짓말처럼 배가 고파요 얼굴을 뒤적이다 가는 고양이들
줄줄이 나무들이 쓰러집니다 어제 죽은 내가 전하는 안부 같아서 양팔을 벌리고 검은 해일을 안아요 다음 장면에선 비가 오고 철골만 남은 건물들이 유령처럼 서 있습니다 이곳에선 내가 주인공이에요 모자를 썼다 벗었다 쓰며 스러져가는 불빛을 흉내 내죠 목소리가 나오지 않지만 괜찮아요 가위를 든 손이 불현듯 나타났다 사라져도
꽃병에 꽂혀 있는 흰 뼈들 성냥으로 만든 집은 자주 흔들립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오면 방금 전 내다 버린 상자들이 도착해 있고 창문은 추락을 보여줄 때 가장 선명해지지요 창밖의 아이들은 온종일 머리통을 공처럼 굴리며 놀아요 소매가 더러워지도록 땅을 파면 몸통들이 웃고 있고
나도 따라 환하게 웃어봅니다 누군가 또 나를 찢고 달아나요 나는 다시 빛나는 눈을 가진 맹인이 되어...... 맹렬한 불 속에서...... 진짜 죽음이 와도 완성하지 못할 긴 편지를 쓰고 있어요 벽에서 태어난 새들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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