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선 누구나 아름답게 웅크리는 법을 연습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우산이 뒤집히고 비에 젖은
거리는 깨뜨리기 좋은 가로등을 기도처럼 매달고 있습니다
나는 가만히 돌을 쥐고 명멸하는 불빛을 봅니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중얼거리며
나만 혼자 커다랗다는 부끄러움
열매처럼 매달린 시퍼런 발들을 끌어내리며
노을은 얼마나 휘저어야 다다를 수 있는 고요의 높이인지 생각합니다
눈을 감으면 오는 기차
여기 두 발을 자르면 국경을 넘어 떠날 수 있을 것 같지만
흙더미 속에서 걸어나오는 짐승들
파도를 끌어안고
덤불숲 너머 불타오르는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흙 묻은 손으로
어떤 기다림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쓰러진 큰 나무에 대해
촛불을 켜놓은 밤입니다
인간보다 몸집이 큰 개들이
밤새도록 인간의 잠을 지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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