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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 화산섬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 안희연 시집, 창비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안희연 시집, 창비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안희연 시집, 현대문학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 서랍의날씨

 

 

 눈앞의 모든 나무를 베어버리고

 

 땅을 판다

 진짜 나무를 심을 것이다

 

 너도 봤어? 매달린 얼굴 앞에 서 있던 것

 두 눈을 촛불처럼 불어 끄고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간 것

 

 발버둥 치던 신발을 입에 문

 저 개는 뚫어져라 나를 본다

 

 누가 자꾸 휘파람을 부는 걸까

 나도 봤어, 나무가 한 사람을 발끝까지 후루룩 삼키는 거

 나는 위악 없이 말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저 개의 눈도 기도로 가득 차 있다

 

 온 나무에 불을 지르고 돌아서는

 오늘은 나의 생일

 "제겐 빵만큼이나 고독이 필요했습니다."

 찢긴 종이를 이어 붙여 공중을 떠도는 목소리를 들을 때

 

 이제 나는 목이 부러지는 높이를 아는 사람

 여름은 충분히 들여다보아야 할 여름이 되고

 이 손은 씻길 수 없는 손이 된다

 

 잠에서 깨어나면 새 나무를 갖게 될 거야

 그 나무에선 아무도 울지 않는 시간이 열릴 거야

 무릎을 꿇고서

 

 나는 온 힘을 다해 고요한 어항을 떠올렸지만 어항 뒤로

 피투성이 얼굴이 겹쳐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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