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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 백색 공간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 안희연 시집, 창비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안희연 시집, 창비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안희연 시집, 현대문학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 서랍의날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고 쓰면

 눈앞에서 바지에 묻은 흙을 털며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한참을

 서 있다 사라지는 그를 보며

 그리다 만 얼굴이 더 많은 표정을 지녔음을 알게 된다

 

 그는 불쑥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지독한 폭설이었다고

 털썩 바닥에 쓰러져 온기를 청하다가도

 다시 진흙투성이로 돌아와

 유리창을 부수며 소리친다

 "왜 당신만 행복한 생각을 할 줄 모릅니까!"

 

 절벽이라는 말 속엔 얼마나 많은 손톱자국이 있는지

 물에 잠긴 계단은 얼마나 더 어두워져야 한다는 뜻인지

 내가 궁금한 것은 가시권 밖의 안부

 그는 나를 대신해 극지로 떠나고

 나는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그다음 장면을 상상한다

 

 단 한권의 책이 갖고 싶어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밤

 나는 눈 뜨면 끊어질 것 같은 그네를 타고

 

 일초에 하나씩

 새로운 옆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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