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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자 - 오래된 이별

 

파의 목소리:최문자 시집, 문학동네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최문자 시집, 민음사 사과 사이사이 새:최문자 시집, 민음사 최문자 시세계의 지평, 푸른사상

 

 

 흔들리는 날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걸려오는 전화

 오래전 돌로 눌러놓은 것들이 움직인다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운전중이었고 녹슨 재채기가 마구마구 쏟아지는 중이었고 아직도 허겁지겁 잊는 중이었고 얼음의 가장자리가 잠시 녹는 중이었고 더욱 핸들이 흔들리는 중이었고 오래된 도로에 금이 가는 중이었고 잊으려던 것들이 신기루처럼 보이는 중이었다

 '이별의 무한궤도를 달리면 시원하다'라는 어느 시인의 허구처럼

 '이별은 시원하다'라는 내 거짓말처럼

 그런 어깨 너머로 오늘까지 걸어왔다

 퇴적층의 고통은 여전하다

 어제까지 가지고 있던 이별의 기억들을 질질 끌어다 쌓는다

 단단하고 딱딱해진 돌로 눌러놓은 납작해진 덩어리들

 얼마나 내가 나를 꼭 붙잡고 있었던지

 차마 이 쌀쌀함이 이 건조함이 무엇인 줄도 모른 채 눈물은 오래전 사냥감처럼 달아났다

 

 아무렇지도 않게 걸려오는 전화

 말할 수 없는 바람이 불어와 흔들리는 중이었고

 푹푹 빠지지 않는 신발을 찾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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