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문자 - 나를 놓고 가요

 

파의 목소리:최문자 시집, 문학동네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최문자 시집, 민음사 사과 사이사이 새:최문자 시집, 민음사 최문자 시세계의 지평, 푸른사상

 

 

 추월은 맛있을까

 나의 뒤가

 나의 앞으로 나오는 신발 소리 들립니다

 

 난처합니다

 

 앞을 잃어버린 곳에 서서

 안경알을 닦아요

 

 비행기는 잡힐까봐 하얗게 날아서 가고

 우르르 뒤로 밀리는 먹먹한 발목

 

 그들이 나를 지났습니다

 

 이 아득한 눈발 그치지 않는데

 나의 가득 붉어진 꽃모가지를 분지르며

 나를 한 장씩 한 장씩 제치며 가요

 

 우리는 여전히 동물일까요

 밤새도록 잎을 먹어치우는 짐승

 뒤를 뒤집으면 나도 짐승의 입으로 보여요

 

 타인의 모든 기억을 추월하는 그

 그들은 한 오십 리쯤 뒤에다

 그림자처럼 나를 놓고 가요

 

 어떤 배고픔이 있었을까요

 누구의 후회일까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문자 - 길 위의 대화  (0) 2021.01.10
최문자 - 오래된 이별  (0) 2021.01.10
최문자 - 탈피  (0) 2021.01.10
최문자 - 구름 애인  (0) 2021.01.10
최문자 - 파밭  (0) 2021.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