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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육조단경]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다

 

 

 혜능의 불교는, 그가 광주의 거리에서 우연히 듣게 된 금강경에 의한 감동에서부터 시작된다. 홍인을 만나본 것은 그때의 경험을 확인한 것이었다. 여기서 혜능은 몸소 금강경의 중심 사상인 마하반야바라밀에 대해 말한다. 마하반야바라밀이란, 혜능 그 자신의 실존이요, 우리들의 실존이다. 그것은 단순한 경전의 문자가 아니다. 또 많은 경전 안에 있다. 특수한 한 글귀도 아니다. 그는 이것을 반야삼매라 부른다. 경전은 사람이 만든 것으로, 경전이 사람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반야바라밀의 참뜻은 이 자명한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사실이다.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현혹과 압도에 의해 죽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큰 비로 땅 위의 돌과 나무들이 떠내려가고 말 때에도, 큰 바다는 이를 받아들여 늘지도 줄지도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혜능은 말한다.

 

 "이제 이미 스스로 삼보에 귀의하여 모두 다 지극한 마음이니, 선지식들을 위해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리라.

 선지식들이여, 그대들은 그것을 생각은 하나 알지 못하는지라 혜능이 말해 주리니 각기 명심해 들으라.

 마하반야바라밀이란 서쪽 나라의 성스런 말로 당나라에서는 '큰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른다'라는 뜻이니라.

 이 법은 모름지기 실행해야 하는 것으로 입으로 외는 것이 아니다. 입으로 외고 실행하지 않으면 꼭두각시와 허깨비와 같으나, 닦고 행하는 이는 법신과 부처와 같으니라.

 무엇을 마하라 하는가.

 마하란 곧 크다는 뜻이다. 마음이 한량없이 넓고 커서 허공과 같으나, 다만 빈 마음으로 앉아 있지 말라. 곧 무기공에 떨어지느니라.

 허공은 능히 해와 달과 별들과, 큰 땅과 산과 물과, 모든 초목과, 악한 사람과 착한 사람, 악법과 선법, 천당과 지옥을 그 안에다 포함하고 있으니, 세상 사람들의 자성이 비어 있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자성이 만법을 포함하는 것이 바로 큰 것으로, 만법 모두가 다 자성인 것이다. 일체의 인간과 인간 아닌 것, 악함과 선함, 악법과 선법을 보되, 모두 다 버리지 않고 그에 물들거나 집착하는 일이 없는 것 마치 허공과 같으므로 크다고 하니, 이것이 마하의 행이다.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으로 실천한다. 또 미혹한 사람은 마음을 비워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것을 크다고 하니, 이 또한 옳지 못하다.

 마음이 한량없이 넓고 크지만 실행하지 않으면 바로 작은 것이니, 입으로 빈 말만 하면서 이 마하 행을 닦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아니니라.

 무엇을 반야라 부르는가.

 반야는 지혜이나, 어느 때나 생각마다 어리석지 않고 항상 지혜를 행하는 것을 곧 반야행이라 하느니라.

 한순간의 생각이라도 어리석으면 곧 반야가 끊어지고, 한순간의 생각이라도 지혜로우면 곧 반야가 생겨나거늘, 마음 속은 항상 어리석으면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반야를 닦아 행한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야는 형상이 없으니, 지혜의 성품이 곧 반야이다.

 무엇을 바라밀이라 하는가.

 이것은 곧 서쪽 나라의 성스러운 말로, 당나라 말로는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이니라. 뜻을 깨달으면 생멸을 벗어나게 되니, 경계에 집착하면 생멸이 일어나서 강에 물결이 이는 것과 같으니, 바로 이쪽 언덕이요, 경계를 떠나면 생멸은 없어 강물이 끊이지 않고 흐름과 같으니, 바로 저쪽 언덕에 이른다고 이름하여 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으로 행하니 생각할 때 망상이 있으면 그 망상이 있는 것은 곧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니며, 한 생각 한 생각이 이를 행하게 되면 이것을 진실이 있다고 하느니라.

 이 가르침을 깨달은 사람은 반야의 법을 깨달아 반야의 행을 닦는 사람이니라. 행을 닦지 않으면 곧 범부요, 한순간이라도 마음에 실천을 하면, 법신과 부처와 같으니라.

 선지식들이여, 번뇌가 곧 보리이니, 생각을 붙들어 미혹하면 곧 범부이고, 뒷생각에 깨달으면 곧 부처이니라. 

 선지식들이여, 마하반야바라밀은 가장 거룩하고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며 제일이라, 현재에 머무름도 없고, 과거로 감도 없고, 미래에서 옴도 없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다 이 가운데로부터 나와 큰 지혜로써 저 언덕에 이르러, 오음과 번뇌와 진로를 타파하니,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며 제일이니라.

 가장 으뜸임을 찬탄하여 최상승법을 행하면 틀림없이 성불하여, 가는 일도 없고 머무름도 없으며, 내왕하는 일도 또한 없으니, 이는 선정과 지혜가 하나가 되어 일체 법에 물들지 않음이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이 가운데서 삼독을 변하게 하여, 계 정 혜로 삼느니라.

 선지식들이여, 나의 이 법문은 8만 4천의 지혜를 따르느니라. 어째서인가.

 세상에 8만 4천의 진로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진로가 없으면 반야가 항상 있어서 언제나 자성을 떠나지 않는다. 이 가르침을 깨달은 사람은 곧 무념이며, 기억과 집착이 없어서 거짓되고 허망함을 일으키지 않으니, 이것이 곧 진여의 성품이니라. 지혜로써 관조하여, 모든 법을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으니, 곧 견성하여 불도를 이루느니라."

 

 선지식들이여, 만일 심심한 법계로 들어가, 반야삼매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바르게 반야바라밀의 행을 닦을 것이며, 오로지 금강반야바라밀경 한 권만 지니고 수행하면 곧 견성을 얻어 반야삼매에 들어가느니라.

 이 사람의 공덕이 한량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경에서 분명히 찬탄하였으니, 능히 다 갖추어 설명하지 못하느니라. 이것은 곧 최상승법으로써 큰 지혜와 높은 근기의 사람을 위하여 설법한 것이니, 만약 근기와 지혜가 모자란 사람이 이 법을 들어도 마음에 믿음이 생기지 않으니, 무엇 때문인가.

 비유하면 큰 용이 큰 비를 내리는 것과 염부제에 비가 내리면 도시와 마을은 모두 표류되어 풀잎을 띄우듯 할 것이고, 큰 비가 큰 바다에 내리면, 불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대승의 사람이 금강경을 설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열려 깨달아 알게 되니, 그것은 본 성품에 본래부터 반야의 지혜를 지니고 있어서, 그 스스로의 지혜로써 관조하여 문자를 빌리지 않느니라.

 비유하면, 저 빗물과 같이, 하늘로부터 내리는 것이 아니고, 원래 이것은 용왕이 강과 바다에서 몸소 이 물을 끌어다가, 모든 중생과 모든 초목과 모든 유정과 무정으로 하여금 다 혜택을 입게 하고, 모든 강물은 결국 큰 바다로 들어가게 되는데, 바다는 여러 강물을 받아들여 한 몸으로 합쳐지는 것과 같아서, 중생의 본래의 성품인 반야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근기가 작은 사람은 단번에 깨닫는 이 가르침을 들으면, 마치 땅 위의 뿌리 약한 초목이 큰 비가 한 번 쏟아지게 되면 거꾸러져 자라나지 못함과 같으니, 작은 근기의 사람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반야의 지혜가 있는 점은 큰 지혜를 가진 사람과 차별이 없거늘, 어찌하여 법을 듣고도 곧 깨닫지 못하는가.

 삿된 소견의 장애가 무겁고,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니라.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려 바람이 불지 않으면 해가 능히 나타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반야의 지혜도 또한 크고 작음이 없으나 모든 중생이 스스로 미혹한 마음이 있어서 밖으로만 부처를 찾으므로 자성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이와 같이 근기가 작은 사람이라도 단번에 깨닫는 가르침을 듣고도 밖으로 닦는 것을 믿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마음 속에서 자기 본성으로 항상 바른 견해를 일으키게 하면, 번뇌와 진로의 중생들도 다 깨닫게 되니, 마치 큰 바닥 뭇 강물을 받아들여 작은 물과 큰 물이 합해 한몸이 되는 것과 같다. 바로 자성을 보면 안팎에 그 어디에도 머무는 일이 없고, 오가는 것이 자유로워 능히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어 통달하여 거리낌이 없으니, 마음으로 이 행을 닦으면 곧 반야바라밀경과 더불어 아무런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경전과 그 속의 문자, 소승과 대승에 속하는 십이부의 경전이 모두 사람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졌으니, 지혜의 성품에 따라 능히 세워진 것이니라. 만일 나가 없다면, 만법은 본래부터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만법은 원래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모든 경전은 사람으로 인해 있음을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사람 가운데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고, 지혜로운 사람도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은 작은 사람이 되고, 지혜로운 사람은 큰 사람이 되느니라.

 지혜 있는 사람은 미혹한 사람에게 묻고,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해 법을 설하여, 어리석은 사람을 깨우치게 하고 마음을 열리게 하니, 미혹한 사람이 만일 깨달아 마음이 열리게 되면, 큰 지혜를 가진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므로 알아야 할지니 깨닫지 못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한순간 생각이 깨치게 되면 중생이 곧 부처이니라.

 그러므로 만법이 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함에도 어찌하여 자기 마음을 좇아 진여의 본성을 단번에 나타내지 않는가. 보살계경에서는 '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 청정하다' 라고 하였으니, 자기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보아, 스스로 불도를 성취하는 것이며, 당장 홀연히 깨달아 본래의 마음을 도로 찾아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