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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하 - 눈동자 하나 없는 섬을 걸었다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시집, 문학동네 [달]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이원하) (마스크제공), 단품 신춘문예 당선시집(2018), 문학세계사

 

 

 말 그대로

 눈동자 하나 없는 섬을 걸었다

 가을이 서러워서 그랬다

 

 바다는 하늘을 가졌고

 때때로 내 얼굴을 가지기도 하였지만

 

 나는 그저

 빈 섬에 몸담은 유일한 슬픔이었다

 

 글이 책에 묶여 있는 것처럼

 숲에 묶여 있는 유일한 슬픔이었다

 

 언제 흘렸는지 모르는 내 얼굴을

 바다 표면에서 발견하는 것처럼

 혼자 있어야 발견될 수 있는 슬픔이었다

 

 혼자 있어서 발견된 질문도 하나 있었다

 

 섬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나

 

 답을 허공에 부탁했을 때

 아무런 대답이 없었으므로

 내 나름대로 생각해야 했다

 

 생각은 가꿔도 칙칙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기적은 없었다

 기적을 바라지 않으니 참을 것도 없었다

 

 빛을 비춰볼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