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눈동자 하나 없는 섬을 걸었다
가을이 서러워서 그랬다
바다는 하늘을 가졌고
때때로 내 얼굴을 가지기도 하였지만
나는 그저
빈 섬에 몸담은 유일한 슬픔이었다
글이 책에 묶여 있는 것처럼
숲에 묶여 있는 유일한 슬픔이었다
언제 흘렸는지 모르는 내 얼굴을
바다 표면에서 발견하는 것처럼
혼자 있어야 발견될 수 있는 슬픔이었다
혼자 있어서 발견된 질문도 하나 있었다
섬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나
답을 허공에 부탁했을 때
아무런 대답이 없었으므로
내 나름대로 생각해야 했다
생각은 가꿔도 칙칙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기적은 없었다
기적을 바라지 않으니 참을 것도 없었다
빛을 비춰볼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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