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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하 - 하나 남은 바다에 부는 바람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시집, 문학동네 [달]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이원하) (마스크제공), 단품 신춘문예 당선시집(2018), 문학세계사

 

 

 걸을 때 미풍이 불었고

 앉을 때도 미풍이 불었는데요

 찰칵, 하고 뒤돌았을 땐

 낮의 세월이 지나갔어요

 

 하는 수 없이

 바람 세기에 대해 고민해봤어요

 

 나의 집 창가엔

 밤과 낮을 구분하는 식물이 살아요

 뒤통수가 예쁜 식물이라

 내가 책보다 자주 읽어내려가고 있죠

 

 바람이 시작되면

 뒤통수를 내밀며 표정을 가리는데요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닐 거예요

 

 바람이 없으면

 식물은 살지 못하니까요

 

 살지 못하는 이유가

 이끼 때문은 아닐 거예요

 

 이끼는 바람 부는 곳에서도

 태어나니까요 그리고 정해진 운명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왜 그럴까요

 세상의 많은 일들은 왜 그럴까요

 

 한 문장으로 정리를 해보면

 

 고작이지만

 

 식물이 손가락을 펼 때는

 미풍이 불기 때문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