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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명 - 자물쇠 악보

 

쇼펜하우어 필경사, 천년의시작

 

 

 허밍하는 숲아

 재미 삼아 던진 음이름 하나 불러 줘

 

 호수를 배반한 물고기는 울고 울어서

 나무 위에 올라 산란하고 있어

 

 바람아, 검은 구름 비질해

 악어 장식 속에 뭔가 있다고 도둑을 불러와

 뒤뜰 긴 의자에 마지막 연인으로 앉아 있는

 내가 키운 편식의 보물

 거친 키스로 까만 음자리표 걷어 줘

 뭐라도 주고 싶은 정원으로 남아 있게

 

 정물 같은 소녀는

 혼자서도 당당할 때 사랑한다고?

 첫 번째 거짓말처럼 우연으로 돌아와

 

 포수 앞에서 발을 구겨 넣는 날개야

 낮꿈의 꼬임에 발뒤꿈치를 데인 호기심아

 나를 중얼거리다 달아나는 이름들

 젖지 않을 우산 같은 표정들

 보이니?

 

 거부하는 후음으로

 네가 꽃필 때

 나는 검은 공터야

 먼 곳의 너를 더 멀리 떠나간 너를

 뒷북치며 따라가는 손은 하얘지고 있어

 

 어딘가에서 늙어 갈 단 하나의 열쇠야

 밑동을 자르던 기계톱의 살기로

 나를 동강 내 줘

 

 골똘히

 친밀과 비밀 사이를

 횡단하는

 열쇠 없는 꿈속

 두 개의 건반으로

 멀고 먼

 코뿔소 달리는 소리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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