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시계 속에 알을 낳는다
뿌옇게 울음을 터뜨리는 둥근 이마들
핀셋을 쥔 초침이 반투명한 뼈들을 부숴도
안개는 또다시 산란한다
모든 것을 통과시키지만 어느 것도 내보내지 않는
유리에 갇혀
시계 속에서 태어나고 죽는 시간을 안개,
라고 불러본다
머리맡에 물이 흐르는 날이면 어김없이
꿈에서 백발의 디아나를 본다
세 시와 다섯 시 사이에 번지는 습기가 젖은 발톱이라면
디아나는 지금 파란 입술을 버리고 있는 중일까
안개가 알을 낳기 시작한 뒤부터 나는
똑딱똑딱
죽은 시간을 데려다가 끌어안고 잠드는 미치광이가 되었다
유리 속에서
원망도 기대도 없이 나를 보는 눈들을 손으로 문지르는
냉혈한이 되었다
시계를 서랍 속에 넣어 두기로 한다
디아나가 서랍을 열고 차가운 발을 내밀 때까지 나는
몽정을 할 것이다
시간 속에서 시간이 죽듯
안개 속에서 나를 죽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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