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 수 있을까
밥을 삼키는 식탁 위에
냄비 받침이 더러워지는 날들
숟가락으로 퍼 먹을 밥이 남지 않을 때까지
자주 배가 고프고
열이 내리지 않는 생활
무릎으로 머리가 기울어지고
기울어지는 곳이 바닥이고
바닥에 깨져 구르는 게 내일이고
내일은 사막에 두고 온 겨울 장갑을
가지러 가자
모래로 눈사람을 만들어
식탁에 앉히는 거야
밥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모래가 부드럽게 물결치는 소리
밥이 부족하면 모래를 씹을 수 있겠지
식탁에 오르는 것들은 전부
죽거나 다치거나 뒤틀려 있어서
잘린 다리와 토막 난 등뼈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
헨젤과 그레텔은 버릴 빵이 있어 좋겠다
비가 온다면
식탁 위에
사막에
죽은 사람들 얼굴에
사용하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내일 비가 온다면
몇 배로 불어나는 바닥
진흙이 되어 밀려들어오는 사막
맑은 빗물이 담겨 찰랑이는 접시
아무도 죽지 않는 부엌
나뭇가지처럼 잎이 돋아나는 손목
비가 온다면
처음으로 밥을 남길 거야
다치고 죽은 것들은 먹지 않을 거야
사막에 겨울 장갑 대신
너를 두고 올 거야
빵 부스러기들이 가리키는 길 따라
비처럼 맑은 통증으로 흘러가
내일의 바닥이 없는
사막에서 오늘
토마토 축제처럼
태양이 함부로 버려지는
세상을 볼 수 있겠지
모래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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