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으로 만든 집에선 비가 손님이야
비가 자꾸 문을 두드려
젖지 않는 곳이 여기뿐이란 걸 알고 있나 봐
비를 비 맞힌 채 우리는 웅크리고 있었다
뾰족한 손가락을 가진 비는
우산 위에서 칠판 긁는 소리로 변하는지도 몰라
네가 통과시킨 오후가 파란 이마 위에서 밤이 되었다
우산집이 무너지면 세상이 모두 젖게 돼
문을 열어주지 말자, 여기서 나가지도 말자
땀이 강아지처럼 겨드랑이를 파고들고
우리는 자꾸만 침이 고였다
그림자가 없는 비가 널 그림자로 만들려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
집으로 가는 네 종아리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죄악이 흘러내렸다
너와 내 비밀이 이젠 나만 아픈 병이 되어버렸잖아
나는 이 세상의 손님이야
비에 젖지 않는 곳은 아무 데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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