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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 우산집

 

문학수첩)오늘의 냄새 : 이병철 시집 (시인수첩 시인선 10) [새미]원룸속의 시인들 - 새미비평신서 22, 새미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이병철 산문집, 산지니 낚 ;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북레시피

 

 

 우산으로 만든 집에선 비가 손님이야

 

 비가 자꾸 문을 두드려

 젖지 않는 곳이 여기뿐이란 걸 알고 있나 봐

 

 비를 비 맞힌 채 우리는 웅크리고 있었다

 

 뾰족한 손가락을 가진 비는

 우산 위에서 칠판 긁는 소리로 변하는지도 몰라

 

 네가 통과시킨 오후가 파란 이마 위에서 밤이 되었다

 

 우산집이 무너지면 세상이 모두 젖게 돼

 문을 열어주지 말자, 여기서 나가지도 말자

 

 땀이 강아지처럼 겨드랑이를 파고들고

 우리는 자꾸만 침이 고였다

 

 그림자가 없는 비가 널 그림자로 만들려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

 

 집으로 가는 네 종아리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죄악이 흘러내렸다

 

 너와 내 비밀이 이젠 나만 아픈 병이 되어버렸잖아

 

 나는 이 세상의 손님이야

 비에 젖지 않는 곳은 아무 데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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