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요오드 용액으로 엎질러진
교실에선 네 머리카락 냄새가 난다
책상 아래 금색 먼지가 날아오르고
거기 네가 벗어 둔 고무 실내화가 있다
내가 이 교실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사방이 세피아 톤으로 물드는 오후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학급게시판에 붙은
사진 속에서 네가 웃는다
너를 웃게 만들던 노래
제멋대로인 내 음정을 들으며
너는 소리 없이 웃었다
쓸어 넘긴 머리칼 사이로 빛나던
귀처럼 실내화가 하얗다
고무 속에 밴 네 향기가
숨을 빨아들여, 숨 가쁜 내 얼굴은
다시는 너를 볼 수가 없다
너는 이 교실의 모든 것을 싫어했다
지점토로 만든 꽃병
손잡이가 깨진 주전자
불조심 포스터와 낡은 풍금
웃어대는 아이들, 선생님의 헛기침
네가 좋아한 건 나뿐이란 걸 알아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란 것도
네 실내화는 참 하얗다
더께가 낄 때까지 노래를 불러줄게
듣고 있니? 웅웅거리는 바람
녹슨 햇살이 번져가는 소리
교실이 사진 속에 갇히기 전에
저 문으로 나가야만 하는데
네가 웃는다, 나는 떠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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