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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 고무 실내화가 있는 교실

 

문학수첩)오늘의 냄새 : 이병철 시집 (시인수첩 시인선 10) [새미]원룸속의 시인들 - 새미비평신서 22, 새미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이병철 산문집, 산지니 낚 ;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북레시피

 

 

 햇빛이 요오드 용액으로 엎질러진

 교실에선 네 머리카락 냄새가 난다

 책상 아래 금색 먼지가 날아오르고

 거기 네가 벗어 둔 고무 실내화가 있다

 내가 이 교실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사방이 세피아 톤으로 물드는 오후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학급게시판에 붙은

 사진 속에서 네가 웃는다

 너를 웃게 만들던 노래

 제멋대로인 내 음정을 들으며 

 너는 소리 없이 웃었다

 쓸어 넘긴 머리칼 사이로 빛나던

 귀처럼 실내화가 하얗다

 고무 속에 밴 네 향기가

 숨을 빨아들여, 숨 가쁜 내 얼굴은

 다시는 너를 볼 수가 없다

 너는 이 교실의 모든 것을 싫어했다

 지점토로 만든 꽃병

 손잡이가 깨진 주전자

 불조심 포스터와 낡은 풍금

 웃어대는 아이들, 선생님의 헛기침

 네가 좋아한 건 나뿐이란 걸 알아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란 것도

 네 실내화는 참 하얗다

 더께가 낄 때까지 노래를 불러줄게

 듣고 있니? 웅웅거리는 바람

 녹슨 햇살이 번져가는 소리

 교실이 사진 속에 갇히기 전에

 저 문으로 나가야만 하는데

 네가 웃는다, 나는 떠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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