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 화창하면 저녁은 우글거린다. 쇠고기 스튜, 까르미네르 와인, 음식물 쓰레기, 달, 키스, 피, 오이비누, 냄새가 모인 골목엔 아이들이 뛰어놀고, 냄새를 못 맡는 노인들은 스스로 냄새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익숙함을 기억할 뿐 코는 감각하지 못한다. 담배와 꽃, 쇠와 유리 사이로 아까시가 우유처럼 엎질러지는 오늘, 냄새와 향기는 어떻게 다르지? 냄새는 향기를 흉내 내고 향기는 어쩔 수 없이 냄새가 된다. 나는 네 향기보다 냄새가 좋아. 우리가 누운 자리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된 쇠고기 스튜와 키스가 된 까르미네르 와인과 오이비누에 씻겨나간 핏물 위로 달이 부풀었다. 너한테서 모르는 냄새가 난다. 이제 우리는 코와 새끼발가락만큼 멀어질 거야. 너는 발을 코에 갖다 대며 웃었다.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 말이 없었다. 이미 죽은 땀 냄새 살 냄새가 우리의 마음이야. 창문을 열자 새벽이 짙은 몸을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은 귀신, 서로의 냄새가 너무 익숙한 우리는 귀신처럼 새벽을 걸었다. 손을 잡아도 손이 없고 어깨를 빌려줘도 머리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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