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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 순환하는 밤

 

창조자, 민음사 죽음의 모범:보르헤스 가명 소설 모음집, 민음사 알레프, 민음사 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 민음사

 

 

 피타고라스의 까다로운 제자들은 알고 있었지.

 우주와 인간이 순환한다는 것을.

 숙명적으로 미립자가 황금빛 성마른 아프로디테,

 테베인들, 아고라를 복제한다는 것을.

 

 켄타우로스는 미래에 통말발굽으로

 라피테스족의 가슴을 짓밟으리.

 로마가 티끌로 화할 때, 미노타우로스는

 악취 풍기는 그의 궁전 속에서 무한한 밤을 신음하리라.

 

 모든 불면의 밤이 세세히 회귀하리라.

 이 글을 쓰는 손도 동일한 배에서 또다시 출생하리라.

 강고한 군대가 심연을 건설하리라.

 (에든버러의 데이비드 흄이 똑같은 말을 했네.)

 

 시간 단위가 기계적으로 반복되듯,

 제2의 주기에서 우리가 그렇게 회귀할지는 모르겠네.

 하나 피타고라스의 암묵적인 순환이

 밤이면 밤마다 우주의 한 지점에 나를 위치시킴을 아네. 

 

 아라발에 속해 있는 지점이지.

 북쪽에 있든, 남쪽에 있든 아니면 서쪽에 있든지 간에,

 항상, 하늘색 담벼락, 짙은 무화과 나무,

 파손된 보도의 아련한 길모퉁이지.

 

 그곳에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있네.

 사람들에게 사랑이나 황금을 선사했던 시간이

 내게는 겨우 생기를 잃은 장미,

 거리들이 엮어 낸 허망한 실타래만을 남기네.

 

 내 핏줄의 과거 이름들을 - 라프리다, 카브레라,

 솔레르, 수아레스...... - 되풀이하는 거리들이 엮어 낸.

 (이미 비밀스런) 기상 나팔, 공화국, 말, 아침,

 행복한 승리, 용사적 죽음들이 고동치는 이름들.

 

 주인 없는 밤에 장중함을 더하는 광장들은

 황량한 궁전의 후미진 뜰이오,

 그 공간을 잉태한 일률적인 거리들은

 막연한 공포와 꿈의 복도라네. 

 

 아낙사고라스가 해독한 오목한 밤이 회귀하네.

 변함없는 영원이 내 육신에 회귀하네.

 그리고 계속되는 한 편의 시에 대한 기억(계획?)이 :

 "피타고라스의 까다로운 제자들은 알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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