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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 아드로게

 

창조자, 민음사 죽음의 모범:보르헤스 가명 소설 모음집, 민음사 알레프, 민음사 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 민음사

 

 

 늘상 똑같은 노래를 조율하는

 은밀한 새,

 순환하는 물, 야외 테이블,

 어렴풋한 동상, 괴이한 폐허.

 

 향수 어린 사랑이나 여유로운 오후에

 어우러지는 이 정경이 연출된 공원.

 그곳의 검은 꽃들 사이로 내가 사라진들,

 불가해한 밤에는 아무도 저어하지 않으리.

 

 공허한 어둠에 잠긴 공허한 차고 문이,

 베를렌도 훌리오 에레라도 유쾌해 했던

 분가루와 재스민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의

 너울거리는 경계를 가르고 있음을 나는 아네.

 

 유칼리 나무 약 내음이

 어둠에 깃들이네.

 시간과 모호한 언어를 초월하여

 별장촌 시절을 회상시키는 해묵은 내음이.

 

 내 발걸음은 고대하며 찾던 입구를 발견한다.

 발코니가 그 어스름한 윤곽을 정의하고,

 체스 무늬 정원에서는

 수도꼭지가 주기적으로 물방울을 떨군다.

 

 문들 저편에는

 환영의 어둠 속에서 꿈의 작용을 빌어

 광대한 어제와 죽은 사물들의

 주인이 된 것들이 잠들어 있네.

 

 나는 이 오랜 건물의 모든 사물을 알고 있지.

 흐릿한 거울에

 끊임없이 복제되는

 회색빛 돌 위 운모 절편,

 

 고리를 물고 있는 사자 머리,

 붉은 세계, 녹색 세계의 아름다움을

 아이에게 가르쳐 준

 채색 유리들.

 

 그들은 운명과 죽음 너머에 존속하고,

 각자의 역사가 있지.

 하나 이 모두는 기억이라는

 일종의 사차원에서 벌어지네.

 

 뜰과 정원들은 지금

 기억 속에, 기억 속에만 존재하네.

 과거는, 태백성과 여명을 동시에 머금고 있는

 그 금지된 영역 속에 그들을 간직하고 있지.

 

 에덴동산이 최초의 아담에게 선사했던 장미처럼

 지금은 접근조차 할 수 없을

 소박하고 애정 어린 사물들의 그 정연한 질서를

 어찌하여 나는 상실하였을까?

 

 그 저택을 생각할 때

 비가의 유서 깊은 망연함에 휩싸이네.

 시간이고 피이며 고뇌인 나는

 세월이 어찌 가는지 이해할 길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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