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오후, 총탄이 귀청을 울린다.
먼지를 흩날리며 바람이 휘몰아치고,
기괴한 전투가 낮 동안 전개되는데,
승리가 적의 것이네.
승리하네 야만인들이, 가우초들이 승리하네.
법률과 교리를 공부했던 내가,
이 살벌한 지방들의
독립을 선언했던 나
프란시스코 나르시소 데 라프리다가 패하였다네.
피와 땀으로 얼룩진 얼굴로,
넋이 빠져 희망에다 두려움마저 상실한 채
끝 다한 아라발들을 지나 남쪽으로 도주하네.
평원을 피로 물들이며 도보로 패주하다 다다른
이름 모를 어느 거무스름한 강에서
죽음이 눈을 감기우고 넘어뜨렸던 그 대위처럼,
나도 그렇게 스러지리라.
오늘이 마지막이려네.
나를 노리며 늪지를 잠식하는 밤으로 주춤거리네.
기수, 말, 창과 함께
이 몸을 찾아 헤매는,
달아오른 내 죽음의 말발굽 소리.
판결, 책, 포고와 더불어 사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했던 내가
노천 수렁 속에 잠들지리니.
하나 설명할 길 없는 은밀한 환희가
내 가슴을 신들리게 한다.
남아메리카에서의 내 운명과 마침내 조우했음이니.
어린 시절 언젠가부터 내 삶의 나날들이
옭아 왔던 걸음걸음, 그 여러 겹 미로가
나를 이 몰락의 오후로 쭈욱 이끌었지.
마침내 내 인생의,
숨겨진 열쇠를 발견하였네.
프란시스코 데 라프리다의 운명,
빠져 있었던 문자,
애초에 신이 인지한 완벽한 형상을.
오늘 밤이라는 거울에서
의심할 바 없는 영원한 내 얼굴에 도달하네.
원이 완성될 것이고, 나도 그렇게 되기를 고대하지.
나를 쫓던 창 그림자가 발치를 밟는다.
죽음의 악다구니, 기수, 말갈기, 말이
나를 옥죄어 오고......
벌써 첫 번째 충격이,
벌써 가슴을 가르는 단단한 칼날이,
숨통에 와 닿는 내밀한 비수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게오르크 트라클 - 기타 소리 가득한 나뭇잎 사이로... (0) | 2021.06.19 |
---|---|
게오르크 트라클 - 젊은 하녀 (0) | 2021.06.18 |
보르헤스 - 순환하는 밤 (0) | 2021.06.18 |
보르헤스 - 거리 (0) | 2021.06.17 |
보르헤스 - 아드로게 (0) | 2021.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