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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 내 인생의 책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이장욱 시집, 문학과지성사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이장욱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천국보다 낯선:이장욱 장편소설, 민음사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이장욱 시집, 현대문학 혁명과 모더니즘:러시아의 시와 미학, 시간의흐름

 

 

 그것은 내 인생이 적혀 있는 책이었다. 어디서 구입했는지

 누가 선물했는지

 꿈속의 우체통에서 꺼냈는지

 

 나는 내일의 내가 이미 씌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따라

 살아갔다.

 일을 했다.

 드디어 외로워져서

 

 밤마다 색인을 했다. 모든 명사들을 동사들을 부사들을 차례로 건너가서

 늙어버린 당신을 만나고

 오래되고 난해한 문장에 대해 긴 이야기를

 

 우리가 이것들을 해독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영

 눈이 내리고 있기 때문

 너무 많은 글자가 허공에 겹쳐 있기 때문

 

 당신이 뜻하는 바가 무한히 늘어나는 것을 지옥이라고 불렀다. 수만 명이 겹쳐 써서 새까만 표지 같은 것을 당신이라고

 당신의 표정

 당신의 농담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이상한 꿈을 지나서

 

 페이지를 열 때마다 닫히는 것이 있었다. 어떤 문장에서도 꺼내어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당신은 토씨 하나 덧붙일 수 없도록 완성되었지만

 눈 내리는 밤이란 목차가 없고

 제목이 없고

 결론은 사라진

 

 나는 혼자 서가에 꽂혀 있었다. 누가 골목에 내놓았는지

 꿈속의 우체통에 버렸는지

 눈송이 하나가 내리다가 멈춘

 딱 

 한 문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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