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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 폭염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이영주 시집, 문학과지성사 108번째 사내 : 개정판 언니에게:이영주 시집, 민음사 차가운 사탕들, 문학과지성사

 

 

 수염이 없으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옛이야기를 노인이 되어서야 들었습니다. 아침마다 떨리는 손으로 수염을 깎으면서, 그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어요. 다시 태어난다면, 첫번째로 기도를 하겠습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스스로 울 수 있는 순간부터 그는 길에서 울고 있습니다. 우리는 울면서 태어나는데, 두번째 기도를 하려고 합니다. 다시는 울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는 수염을 깎고 인공 눈물을 넣고 두 손을 모아 흐릿한 시야를 가늠해봅니다. 어지러운 햇빛이 쏟아지네요. 비밀이 있다면, 세번째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매일매일 골목길의 잎들을 쓸어내고 건물의 유리창을 닦으면서 바깥으로 던져진 시간을 확인합니다. 인간이 서서 걷기 시작하면서 손이 자유로워졌다고 합니다. 왜 이곳의 꽃은 항상 쓰레기 더미 위에서 피어날까요. 목련 나무 아래 놓인 쓰레기를 버리며 생각합니다. 슬픈 기도가 두 손에서 흘러나오는 이 한낮은 너무 뜨겁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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